부좌이좌(敷座而坐) 하시다
자리를 펴고 앉으시다
금강경’ 32품 중 제1품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서두의 글이다.
“이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대비구 1250명과 함께 계셨다. 밥때가 되자 세존께서는 가사를 수하고 바리때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성안에서 밥을 빌 적에 차례로 일곱 집을 마치고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와 밥을 들고, 가사와 바리때를 거두고 발을 씻고는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여기엔 일상을 뛰어넘는 비범한 가르침이 있는데 이를 짐작이나마 하게 된 것은 그 평범한 일상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였다. 아이들을 제쳐 두고 직장으로 뛰어야 했던 젊은 시절, 무덥고 나른한 오후였다. 몸에 열도 느껴지고 발걸음은 무거운데 양손에는 저녁 찬거리가 들려 있었다. 눈앞 언덕길은 턱에 차고 날은 저무는데 아이들이 배고플 시각, 잠시 서러운 감정이 솟구쳤다. 황망히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내 앞에 맨발로 우뚝 나타나신 부처님! 묵묵히 가사를 수하고 한 손에 밥을 빌어 든 채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서 계셨다. 애민한 눈빛으로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려는 듯했다. 순간 힘겹던 내 삶의 무게가 그대로 녹아내렸다. 그분 손에 들린 밥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밥을 빌어 오신 것은 아닐 테다. 그분은 법도(法度)대로 일상을 지키고 나서 환지본처(還至本處)해 높은 정(定)에 드셨다. 걸식한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신 것’에 ‘금강경’의 요의(了義)를 다해 마쳤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먼저는 계(戒)요, 앉으신 것은 정(定)으로서 무언(無言)의 삼매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에 앞서 일상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주시다니. 나는 눈앞 언덕길을 바라보며 내가 도달해야 할 그 환지본처를 생각했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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