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잠재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낙원을 상실해야 한다.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년)의 한 대목이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해 인간의 물질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생활도 완전히 통제·규격화돼 운영되는 미래의 영국사회를 펼쳐 보인다. 정부가 인간배아 배양소를 운영하면서 발달단계에 있는 배아는 잘 자라게 관리하고 그러지 못한 배아는 의도적으로 잔인한 화학처리를 한다. 모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격한 교육과 최면을 통해 길들이고 계급에 따라 차별대우를 한다. 이 같은 사회제도는 안전망 역할을 하지만 인간성과 자유의지를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생명공학기술에 의해 인류를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하거나 인구를 통제하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 심지어 ‘소마’라는 환각제 한 알로 배고픔과 고독, 인간의 절망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 소마는 고통 없는 지상천국을 제공하지만, 사실은 의식을 포기하는 수단임을 작가는 넌지시 귀띔한다. 따라서 인간은 주체성 없는 ‘기계의 부속품’ 결국 기계문명만이 남는다는 불평등 방정식을 제시한다. 인간의 잠재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낙원’을 상실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토머스 모어의 책 ‘유토피아’에서 처음 사용된 ‘유토피아(utopia)’는 ‘아무 데도 없다’는 의미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모든 것이 인류 전체를 위해 최선의 상태로, 빈곤이나 불행 등 사회악이 추방된 나라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개혁의 아우트라인을 그린 것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후 ‘유토피아’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理想鄕)’의 뜻으로 쓰인다. 1958년 헉슬리는 실제로 세상이 ‘멋진 신세계’에서 예측한 ‘디스토피아’를 향해가고 있다고 주장한 에세이집 ‘멋진 신세계에 대한 재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88년 전, 그는 기계문명의 폐해를 이같이 예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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