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2진법
요즘 뉴스에서 '화천대유' '천화동인'이라는 말이 자주 들려요. '대장동 특혜 분양 의혹 사건'에 등장하는 회사들 이름인데, 둘 다 유교 경전인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라고 해요. '화천대유(火天大有)'는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다', '천화동인(天火同人)'은 '마음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좋은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역(周易)'은 중국 주(周)나라 때 만든 역경(易經)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동양에서 중요하게 여긴 유교의 '사서삼경' 중 하나예요. 음양(陰陽)의 원리로 천지 만물이 변하는 원리를 설명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주역엔 수학에서 수를 세는 방법 중 하나인 '이진법'이 숨어 있답니다.
주역에선 '한 일(一)' 자 처럼 생긴 모양을 '양', 양에서 가운데가 끊어진 '- -' 모양을 '음'이라고 하고, 이 둘을 다양하게 짝지어 8괘를 만들고 이걸 다시 64괘로 늘렸어요. 그리고 이 64괘로 사물의 변화를 예측하고 행운과 불행을 점치지요.
여기서 '음'을 0, '양'을 1이라고 하면 64괘를 이진법으로 바꿀 수 있어요. 우리는 일상적으로 0부터 9까지 숫자 10개를 활용해 수를 세는 '십진법'을 사용해요. 이와 달리 '이진법'은 오로지 0과 1만을 사용해 수를 세는 것으로, 현대 컴퓨터에서 정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이죠.
이진법을 처음 수학에 도입한 사람은 17세기 독일의 수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1646~1716)예요. 라이프니츠는 그 당시 중국 베이징에 있는 프랑스 전도사 부베 신부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주역'의 8괘를 접하고 이를 연구해 2진법을 발명했어요. 부베 신부가 주역본에 음양으로 이뤄진 '괘' 그림을 라이프니츠에게 보내줬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2진법에 대한 논문 '새로운 수의 과학에 대한 설명'을 발표했어요.
이후 20세기 수학자들은 라이프니츠의 2진법 체계를 현대 컴퓨터에서 정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시켰어요. 중국의 주역이 17세기 서양에 전해지고 그것이 다시 현대 컴퓨터의 계산 원리로 부활한 것이지요.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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