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산책] 영원히 변하지 않는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1미터 정했어요
미터법의 탄생
▲ 18세기 프랑스 파리에 임시로 설치된 1m 표시 조각. /위키피디아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 왕실 병풍 '요지연도'를 3월의 추천 왕실 유물로 선정했어요. 이 병풍은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인물인 서왕모가 신선들의 땅에서 연회를 베푸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요. 너비가 5m가 넘어 왕실 병풍의 위용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길이를 미터(m), 센티미터(cm) 등 미터법으로 표기하는데요. 조선시대엔 길이를 어떻게 나타냈을까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을 보면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가 나와 있습니다. 당시에는 길이를 리, 푼, 치, 자, 발 등을 사용해 나타냈어요. '10리를 1푼으로, 10푼을 1치로, 10치를 1자로, 10자를 1발로 한다'고 규정돼 있지요. 리가 가장 짧고, 발이 가장 긴 단위예요. 이를 지금 쓰는 미터법과 비교하면 1cm는 3푼 3리와 같아요. 100cm인 1m는 3자 3치인 거죠. '요지연도'는 5m에 달하니 당시 기준으로 16자 5치로 나타낼 수 있죠. 자는 척이라고도 했는데요. '삼척동자도 안다'는 속담을 들어봤을 거예요. 1m가 3자 3치라고 했으니 삼척동자는 키가 3자, 즉 1m쯤 되는 어린아이라는 뜻이에요.
조선시대에 리, 푼 등을 사용한 것처럼 과거엔 나라마다 사용하는 길이 단위가 달랐어요. 하지만 세계 각국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단위가 달라 혼란스러웠죠. 그래서 단위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사람이 늘어났어요. 1791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기준으로 길이 단위를 통일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미터법을 만들고 지구의 북극과 적도 사이 거리의 1000만분의 1에 해당하는 길이를 1m로 정했어요.
이후 프랑스에서 1799년 권력을 잡고 나중에 황제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나폴레옹이 1801년 미터법을 의무화하면서 미터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어요. 1875년엔 17국이 미터협약을 맺으면서 국제적인 단위로 점차 인정됐지요. 그런데 미터법을 사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자들은 지구의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 때문에 날짜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변하지 않는 기준을 찾다가 1983년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빛의 속도를 미터의 기준으로 삼게 됐어요. 빛은 1초에 약 3억 미터를 이동하는데요. 이를 기준으로 1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로 정하게 됐죠.
우리나라는 1905년 대한제국에서 도량형법을 제정해 미터법을 쓰게 됐어요. 지금은 세계 대부분 나라가 미터를 공식적인 단위로 사용하고 있어요. 다만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인치(inch), 피트(feet), 야드(yard), 마일(mile) 등을 길이 단위로 사용하면서 미터법을 혼용해요. 1마일은 1.609km, 1야드는 0.914m, 1피트는 30.48cm, 1인치는 25.4mm입니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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