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산책] 핵무기 폭발 10㎞ 떨어진 곳에서 날린 종잇조각… 폭발 위력 계산해냈죠
페르미 추정
▲ /위키피디아"우리나라에 치킨집이 총 몇 곳 있을까?"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몇 가지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는 약 5000만 명이고, 2~3명이 한 가구를 이루니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를 약 2000만 가구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치킨을 많이 먹는 집도 있고 아예 안 먹는 집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가구당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치킨을 한 번 주문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일주일에 치킨 2000만 마리가 팔린다고 볼 수 있죠.
치킨집이 유지되려면 적당한 이익이 보장돼야 합니다. 하루에 대략적으로 50마리 정도 팔면 된다고 가정할게요. 이 치킨집이 일주일에 6일 영업한다면 한 가게당 일주일에 치킨 300마리를 팝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일주일에 총 2000만 마리를 주문한다고 가정했으니 2000만 마리를 300마리로 나누면 치킨집 수는 약 6만7000여 곳이 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치킨집 수인 8만7000곳과 비교해 보면 정답에 가까운 값을 구한 셈입니다.
이렇게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근사치를 추정하는 방법을 '페르미 추정'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가정과 논리적인 추론으로 짧은 시간에 근삿값을 얻는 걸 가리키죠.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인 엔리코 페르미(1901~1954·사진)의 이름에서 유래했어요. 페르미는 1940년 시카고대학에서 강의 중에 학생들의 사고력을 기르고자 "시카고에 사는 피아노 조율사는 몇 명일까?"라는 문제를 냈어요. 페르미는 우리가 치킨집 수를 추론한 것처럼 몇 가지 가정으로 근사치를 구해냅니다. 페르미가 추정한 피아노 조율사의 수는 당시 실제 시카고 전화번호부에 있는 피아노 조율사의 수와 비슷했다고 해요.
페르미는 1942년 최초로 인공적인 핵반응로 실험에 성공했고, 1944년부터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휘했습니다. 페르미는 최초 핵무기의 폭발 위력도 추정했습니다. 1945년 7월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한가운데서 진행된 최초 핵무기 실험 당시 페르미는 약 10㎞ 떨어진 베이스캠프에 있었습니다. 페르미는 핵폭탄이 터지자 종잇조각을 찢어 폭발로 일어난 바람에 날려 보냈어요. 그리고 떨어진 종잇조각의 위치를 보고 "이 정도의 폭풍이면 TNT 폭약 1만 톤의 폭발 위력에 해당한다"고 추정했어요. 실제로 이 실험에서 핵폭탄의 정확한 폭발력은 TNT 폭약 1만8600톤이었대요.
암으로 세상을 떠난 페르미는 병상에 누워서도 링거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간격을 측정해 링거 유속을 계산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추론을 멈추지 않았던 페르미가 평생 강조한 것은 제한된 시간과 부족한 자료만으로도 답을 찾아가는 '논리적 사고력'입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하고, 빠른 변화로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있어요. 페르미 추정을 활용하면 누구나 아는 간단한 상식에서 빠르게 불확실성을 줄일 정보를 얻을 수 있답니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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