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산책

[수학 산책] '약간' '조금' 등 비수학적 개념을 숫자로 표현… 자동 제어 분야 발전시켜

bindol 2021. 10. 28. 04:51

 

[수학 산책] '약간' '조금' 등 비수학적 개념을 숫자로 표현… 자동 제어 분야 발전시켜

퍼지 이론

 /위키피디아"너 요즘 멋있다."

우리가 종종 친구들과 나누는 기분 좋은 칭찬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멋있다는 뜻일까요? '예쁘다' '멋있다' '귀엽다' 등은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인 표현입니다. 이렇게 주관적이고 애매한 표현을 수학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1965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수학자 자데 교수는 자신의 아내가 예쁘다는 것을 수학으로 표현해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 아니오로 설명할 수 있는 수학의 단순한 논리 구조로는 애매하고 모호한 것을 나타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자데 교수는 '예쁘지 않다'를 0, '예쁘다'를 1로 놓고, 0과 1 사이에 '보통이다(0.5)', '예쁜 편이다(0.8)' 등의 개념을 상대적 중요도로 표시한 0.5, 0.8 등의 숫자로 나타냈습니다. 예쁘다(1) 또는 예쁘지 않다(0)는 수학의 이진법 논리에서 벗어나 각 대상이 예쁘다와 어느 정도 가까운지 나타낸 거죠. 자데 교수는 이 이론을 '퍼지(Fuzzy) 이론'이라고 불렀습니다. 퍼지는 영어로 '흐릿한' '애매한'이란 뜻인데 애매한 경우를 다루는 수학인 셈입니다.

당시 수학자들은 퍼지 이론을 수학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약간' '조금' '서너 개' 등 애매하고 모호한 '비수학적'인 것은 수학이 될 수 없다는 이유였죠. 그러나 퍼지 이론은 컴퓨터 등 전자제품이 개발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컴퓨터는 0과1 두 가지만 인식하고 처리할 수 있는데, 퍼지 이론으로 컴퓨터 시스템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양한 차이를 따져 결정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전자제품의 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요.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전자기기에 퍼지 이론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어컨은 사용자가 특정 온도를 설정할 수도 있지만, 에어컨이 자동으로 실내 온도에 맞춰 가동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실내 온도를 기준으로 모든 사람이 시원하게 느낄 만한 온도와 사람들이 덥다고 느낄 온도 사이에 상대적인 개념들을 놓고 에어컨이 온도를 선택하는 방식이죠. 전기밥솥의 온도 조절 역시 켜짐과 꺼짐 두 가지만 있다가 퍼지 이론이 적용된 후 온도와 열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죠. 지하철의 자동 정지 시스템에도 퍼지 이론이 활용됩니다. 이전에 '출발'과 '멈춤' 방식으로만 운행할 때는 갑자기 속도가 줄어들거나 빨라져 승객들이 불편했습니다. 퍼지 이론이 적용되고 난 후 속도가 늘고 주는 단계를 여러 단계로 나눠 속도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죠. 퍼지 이론은 세탁기의 세제 조절, 엘리베이터, 자동차 제어 장치 등 일상생활 곳곳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퍼지 이론은 미래 기술의 기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은 쏟아지는 정보로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애매한 자료를 정리해야 하는 일도 많죠. 0과 1의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퍼지 이론처럼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퍼지 이론은 인간과 대화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발달에도 기여하고 있답니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