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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321] 차(車) 보시

bindol 2021. 11. 8. 04:20

[조용헌 살롱] [1321] 차(車) 보시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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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1.08 00:00

 

 

선거운동의 방식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워딩이다. ‘귀족 노조’ ‘적폐 청산’ 같은 단어들은 공중폭격의 효과가 있다. 비행기가 공중에서 투하하는 폭탄이 바로 선거용 워딩이다. 다른 하나는 땅개작전이다. 땅개처럼 시장 바닥을 훑고 다닌다. 생선 장수 아주머니와 포옹을 하기도 하고 불그스름한 국물을 입술에 묻히며 떡볶이를 사 먹는 방식이다.

문화계 원로 중에서도 2가지 스타일이 있다. 원로 이어령(87)은 공중폭격이다. 워딩의 귀재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김종규(82) 이사장은 땅개작전이다. 땅개작전의 구체적 방법은 축사를 해주러 다니는 일이다. 70대 중반의 전성기 때만 하더라도 하루에 7~8군데 축사를 해주곤 하였다. 하루에 7~8군데를 하려면 시간대별 교통 상황,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축사의 달인’이다.

축사의 비결을 물었다. 처음에 좋은 이야기 하다가 나름 균형을 잡는다고 막판에 약간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발언을 절대로 하지 않는 일, 그리고 해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땅개작전의 또 한 가지 초식은 자신의 자동차와 기사를 문인들에게 빌려주는 일이다. 돈이 없는 문사들도 때로는 ‘가오’를 잡아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가오의 보편적인 방식은 벤츠와 기사이다.

 

시인 구상(具常·1919~2004)은 199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선 현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차를 그쪽으로 보낼까요?” “보낼 필요 없습니다. 나도 차 있어요.” 자기도 차가 있다는 대답을 자연스럽게 해놓고 구상 시인은 까마득한 후배 김종규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종규야! 내 차 보내라.” 구상은 김종규에게 차 좀 보내달라는 부탁을 할 때마다 자기 차도 아니면서 ‘종규야 내 차 보내라’가 정해진 멘트였다.

롯데호텔에서 정주영을 만난 구상은 정주영에게 ‘대선 나가지 마라’ ‘나는 도와줄 수 없다’ ‘주변 사람도 천거해줄 사람이 없다’고 모두 거절하였다. 박통에게도 ‘박첨지’라고 불렸던 시인 구상의 카리스마였다. 80년대 걸레 중광 스님도 저녁 늦게 김종규의 자가용을 빌려 타고 화곡동 암자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예상되던 시간보다도 한참이나 늦게 기사가 돌아왔다. 이유인즉슨 술에 취한 중광이 차 안에서 오줌을 눠 버렸다는 것이다. 세차장에서 차 내부를 청소해야만 했다. 며칠 후 중광을 만난 김종규는 한마디 했다. “내 차가 벤조구만, 벤츠보다 한 단계 위가 변소까지 달린 벤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