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단양, 삼국시대엔 전략적 중심지였답니다

bindol 2021. 11. 4. 04:30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 단양… 주먹도끼 등 구석기 유물도 발굴
고구려 물리치고 단양 적성 차지하자 신라는 공을 칭찬하는 비석 세웠어요… 온달 장군이 전사한 곳일 가능성도

충북 단양에서 깜짝 놀랄 만한 유물이 발굴됐어요. 주먹도끼·찍개 등 후기 구석기 유물과 함께 눈금을 새긴 길쭉한 돌 제품이 발견된 것이에요. 더 연구해 보아야 알겠지만 이것은 숫자 개념을 기호화한 것, 즉 오늘날의 '자'처럼 숫자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닐까 짐작되고 있지요.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측정 도구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니 참 놀랍지요? 단양에서는 1980년 금굴이라는 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물이 층층이 겹쳐 있는 것이 발굴되어 역사학계를 놀라게 한 적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1500여년 전에 단양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과연 어떤 사건이었을까요? 삼국시대의 단양으로 함께 역사 여행을 떠나봅시다!

◇신라, 적성에서 고구려를 물리치다

"폐하, 기뻐하소서! 우리 군대가 적성에서 고구려 군대를 물리쳤다고 하옵니다."

"적성을 우리 손에 넣었단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정말 장한 일이로다. 적성 공략에서 공을 세운 사람에게 큰 상을 내려야겠구나."

 /그림=이창우

550년경, 이사부를 비롯한 신라 장수 여러 명이 진흥왕의 명령을 받고 적성을 공격했어요. 적성(赤城)은 오늘날의 충북 단양군에 있는 산성이에요. 단양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세력권에 있다가, 고구려 장수왕이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남진정책을 펼칠 때 고구려 영토가 되었지요. 그러자 신라와 백제가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막으려 하였고, 그 과정에서 신라 진흥왕 때 신라군이 적성을 공략하여 단양 지역을 차지한 것입니다.

◇진흥왕, 적성에 비석을 세우다

그 무렵 고구려는 제23대 안원왕에서 제24대 양원왕으로 왕위가 이어졌어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귀족 사이에서 세력 다툼이 벌어져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이었지요. 북쪽에서는 돌궐족이 고구려의 변경을 위협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의 공격에 제대로 맞설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남한강 상류에 자리 잡은 단양은 당시 전략적으로 무척 중요한 지역이었어요. '단양 지역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한반도의 세력 다툼에서 큰 의미를 가졌지요. 신라군이 적성에서 고구려 군대를 몰아내자 진흥왕은 무척 기뻐하며 공을 세운 사람들을 칭찬하고, 그 내용을 새긴 비석을 세우게 했어요. 이를 '단양의 적성에 신라가 세운 비석'이라고 하여 '단양 신라 적성비'라고 부릅니다.

단양 신라 적성비에는 신라군이 적성을 공격할 때 도움을 준 인물들을 칭찬하며 상을 내리고, 지역 주민을 위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죽은 '야이차'라는 인물의 포상 내용도 들어 있지요. 그런데 고구려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인 적성을 신라에 빼앗기고 가만히 있었을까요?

◇온달, 아단성을 공격하다

590년, 고구려 장수 온달은 평원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영양왕 앞에 나아가 아뢰었어요.

"폐하, 지난날 신라에 빼앗긴 한강 유역의 영토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림=이창우"그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나 신라군이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요."

그러자 온달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왕에게 말했어요.

"저를 보내주시면 제가 반드시 신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영양왕은 온달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여 그에게 군사를 내어주고 공격을 명했어요. 온달은 전투에 나서며 아내인 평강공주에게 다음과 같은 맹세를 했대요.

"부인, 계립현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하면 절대 돌아오지 않겠소."

군대를 이끌고 싸움터로 나간 온달은 신라가 차지한 아단성을 공격했어요. 하지만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적진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아요. 이때 고구려 병사들이 온달 장군의 장례를 치르고자 관을 옮기려는데, 웬일인지 관이 움직이질 않았다고 해요. 부인인 평강공주가 그 자리에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라고 말하자, 그때야 관이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의 '열전' 편에 전해집니다.

◇단양, 고구려·신라 모두가 주목한 요충지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아단성은 과연 어디일까요? 단양 사람들은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산성을 아단성으로 여기며 예로부터 온달성이라고 불렀어요. 그런가 하면 지금의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 경계에 있는 아차산성이 아단성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곳이 아단성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충북 단양 지역이 삼국시대에 고구려나 신라에 모두 중요한 지역이었음은 확실해요. 단양 신라 적성비가 그 증거이고요. 단양 신라 적성비는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다고 해요.


[함께 생각해봐요]

단양에는 수양개 유적지, 금굴 유적지, 상시바위그늘 유적지, 구낭굴 유적지 등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참 많아요. 각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을 살펴보면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상상하여 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서영대 | 감수·인하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