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신라 원성왕, 진짜로 홍수 덕분에 왕이 됐을까?

bindol 2021. 11. 4. 04:32

홍수로 궁궐 못 온 정식 계승자 대신해 하늘이 선택한 왕처럼
이야기 만들어 신라 제 38대 임금자리 오른 원성왕
능력 따라 관리 뽑는 독서삼품과 만들어 새로운 정권 안정시키려 노력했답니다

태풍 너구리가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물러나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번 주에도 우리나라가 다른 태풍의 영향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대비를 철저히 해야겠어요. 여름철에는 장마나 집중호우도 조심해야 해요. 홍수는 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물이 불어 넘쳐흐르는 현상을 말해요. 이런 홍수 때문에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인물이 통일신라 때 있었다는데 정말일까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1200여년 전 경주 지방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볼게요.

◇왕의 자리는 하늘이 결정?

785년 신라 제37대 선덕왕이 자식 없이 죽자 대신(大臣)들이 새 왕을 뽑기 위해 궁궐에 모였어요.

"선왕의 친족 중에서 왕위를 이을 사람을 뽑읍시다"

"그렇다면 김주원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왕위 계승의 서열이나 품계로 보면 그가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림=이창우

이들은 김주원을 새 왕으로 모시기로 했어요. 김주원은 당시 국정을 총괄하던 직책인 시중(侍中)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지요. 이 소식은 금세 김주원이 살고 있는 마을에 전해졌지요. 김주원은 서라벌에서 북쪽으로 20리(약 8㎞)쯤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어요. 신라의 수도인 경주 중심에선 조금 떨어진 변두리였지요. 김주원은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궁궐로 향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하천의 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게 되었지요. 김주원의 집에서 궁궐로 가려면 알천이라 불리던 내를 건너야 했거든요. 김주원은 알천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비가 멎길 기다렸지만 그치지 않았어요.

궁궐에서 새 왕을 기다리던 신하들은 뜻밖의 비가 김주원의 발목을 잡았다는 소식에 술렁였어요.

"왕이 될 사람이 갑자기 내린 큰비 때문에 궁궐에 오지 못하다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왕의 자리는 잠깐이라도 비워두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뜻밖의 사태에 당황하는 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임금의 자리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오. 오늘 이렇게 큰비가 내리는 것은 아마도 하늘이 김주원을 왕으로 세울 뜻이 없는 것 아니겠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다른 신하가 이렇게 거들었어요.

"상대등 김경신이 어떻습니까? 그는 왕족인 데다 평소 덕망이 높아 임금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하오."

그러자 다른 신하들 역시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지요.

"옳소. 그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던 인물입니다. 큰비 때문에 궁궐에 못 오는 김주원 대신 김경신을 새 왕으로 세웁시다!"

◇독서삼품과를 설치한 원성왕

김경신은 김양상과 함께 혜공왕 때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인물이에요. 김양상은 혜공왕이 죽은 뒤 왕위에 올라 선덕왕이 되었어요. 삼국유사는 김경신과 김양상이 혜공왕을 살해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선덕왕이 세상을 떠난 뒤 누가 왕이 됐을까요? 신하들 의견이 비 때문에 궁궐로 못 오는 김주원 대신 김경신을 왕으로 받드는 것으로 모였답니다. 그래서 김경신이 왕위를 계승하였고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백성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고 해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이에요. 왕이 된 김경신이 바로 신라 제38대 임금인 원성왕이랍니다.

원성왕은 왕위에 올라 나름대로 개혁을 통해 어수선한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어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한 것이에요.

독서삼품과는 인재 선발 제도의 하나랍니다. 국학의 학생들을 독서 능력에 따라 3품, 즉 3등급(상·중·하)으로 구분해 관리로 선발하는 데 참고로 삼았던 것이에요. 국학은 신문왕 때 설치한 최고 교육기관으로, 입학할 수 있는 나이는 15세부터 30세까지였어요. 독서삼품과는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로도 불렸으며, 국학의 졸업시험이었던 셈이지요. 평가 대상이 된 책은 '효경', '논어', '예기' 등 주로 유교에 관한 것이었어요.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 김주원

비 때문에 궁궐에 오지 못한 김주원은 어떻게 됐을까요? 홍수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말이 정말인지 궁금하지요? 오늘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역사학자들은 거의 없어요. 선덕왕이 죽음을 앞뒀을 당시에 중앙에서 세력이 더 셌던 김경신이 김주원을 제치고 먼저 궁궐에 들어가 왕위에 오른 것으로 짐작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김경신이 자기보다 왕위 계승 서열이 앞선 김주원을 밀어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해 원성왕이 된 것을 정당한 것으로 강조하려고 홍수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것이에요. 마치 자기가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된 왕인 것처럼 말이에요.

어쨌든 왕위에 오르지 못한 김주원은 오늘날의 강릉 지방인 명주로 물러났고, 그곳을 다스리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원성왕이 만든 독서삼품과는 국내 학생들이 관직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한편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관직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독서삼품과의 비중이 줄어들기도 했지요. 여러분이 왕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인재를 뽑을지 생각해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감수=문동석 |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