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시대, 책 빌려주는 가게가 있었다고?

bindol 2021. 11. 4. 05:00

비싸고 흔하지 않아 구하기 어렵던 책… 돈을 받고 빌려주는 '세책점' 생겼죠
한글 소설 나오면서 독서 열풍 불고 목판으로 대량 인쇄한 '방각본' 등장
서민·천민도 저렴하게 빌려봤어요

지난 21일 말 많던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어요. 도서정가제는 서점들이 출판사에서 정한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게 정부에서 강제로 시행하는 제도예요. 이번에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서점에서는 새로 나온 책이든, 나온 지 오래된 책이든 어떤 책도 정가의 15% 이상은 깎아줄 수 없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많은 출판사와 서점들이 오래전에 나온 책은 가격을 더 많이 깎아주며 판매를 부채질했거든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에 대해서는 '책값 거품을 없앨 것이다' '책값이 올라 소비자 부담만 커질 것이다'는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지요. 지금처럼 책이 흔한 시대에도 책값을 놓고 이렇게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책이 무척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사서 읽었을까요?

◇'서점 설치하자'고 주장한 어득강

조선 중종 때인 1529년, 어득강이라는 인물이 임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아뢰었어요. 당시 어득강은 사간원의 으뜸 벼슬인 대사간 자리에 있었지요.

"서점을 세워 책을 팔고 싶은 사람은 팔고, 사고 싶은 사람은 살 수 있게 하면, 공부하는 선비들이 한 가지 서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책을 팔아 다른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사고팔면서 오랫동안 돌려가며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이창우

이 말을 들은 중종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어득강이 계속 아뢰었어요.

"옛날에 집이 가난하여 책이 없는 사람이 시장의 서점에서 책을 열람하여 성공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금 서점을 설치하고 서책을 내놓는다면, 뜻있는 사람은 비록 사다 읽지 않더라도 온종일 보고 나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니, 지극히 편리하고 유익할 것입니다."

어득강이 임금께 서점을 설치하자고 건의한 것이에요. 과연 그의 말대로 서점이 설치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어요. 다른 대신들이 이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지요.

◇책을 방문 판매한 '붉은 수염 책 장수'

조선에 언제 처음 서점이 생겼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요. 다만 1700년대 후반 서민문화가 발달하면서 독서 열기가 높아져 책을 판매하는 곳이 생겼을 것으로 짐작하지요. 그렇다면 서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구했을까요?

"오늘은 붉은 수염 우리 마을에 안 온대?"

"붉은 수염? 아하, 그 책 장수!"

"그래, 분명히 또 재미있는 책을 가지고 올 거야."

"맞아, 그러고 보니 붉은 수염이 올 때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붉은 수염'은 조선시대의 책 장수로 유명한 '조생'이라는 사람이에요. 영·정조 때 인물로, 한양 골목을 누비며 책을 구해 필요한 사람에게 팔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조신선'이라고도 불렀대요. 조선시대에 서점이 나타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조생 같은 책 중개상을 통해 책을 샀던 것이지요. 조선시대의 책 중개상을 '서쾌' 또는 '책쾌'라고 부릅니다.

◇돈 받고 책 빌려준 '세책점'

조선시대에는 책값이 무척 비싼 데다 책을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새로운 책을 살 수도 없고, 아는 사람끼리 돌려보기에도 책이 너무 부족했지요. 그래서 조선 후기에 사람들이 책을 구하러 자주 들른 곳이 있어요.

"저 가게는 무엇을 팔기에 쉬지 않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거요? 좀 전에 보니 여인네들까지 들락거리는 것 같던데…."

"저 가게는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빌려주는 곳이오."

"물건을 빌려준다고? 어떤 물건을 빌려줍니까?"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지요. 저곳이 한양에서 가장 큰 세책점이라오."

'세책(貰冊)'은 돈을 받고 책을 빌려준다는 뜻이에요. 조선시대에 책을 사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란 가게가 생긴 것이지요.

◇한글 소설 등장하며 일어난 독서 열풍

세책점의 인기는 한글 소설이 등장하며 절정에 달했어요. 한글을 아는 사대부 여성과 일반 서민까지 모두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거든요. '홍길동전' '흥부전' '춘향전' '심청전'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 같은 소설은 삶의 교훈을 주는 동시에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답니다. 더구나 비교적 값싸게 빌려볼 수 있는 방각본 소설까지 등장하자, 상인 계층과 일반 서민층은 물론 천민까지도 책을 빌려 보았다고 해요. 방각본(坊刻本)이란 조선 후기에 민간 출판업자가 목판으로 대량 인쇄하여 판매하던 책을 말해요.

"우리 동네와 가까운 곳에 세책점이 생겼다며? 아이 좋아라."

"그래? 우리 당장 세책점 구경 가자."

마을 인근에 세책점이 생겼다는 소식이 퍼지면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책을 빌리러 나섰어요. 당장 돈이 없는 사람은 비녀나 팔찌 같은 장신구는 물론 놋그릇과 솥단지까지 맡기며 책을 빌려 보았다고 해요. 어때요? 조선시대에도 책의 인기가 참 대단하였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조선시대 후반에는 한글 소설이 무척 유행하였다고 해요. 당시 나온 한글 소설 한 편을 읽어보고, 그 소설이 당시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임학성 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