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유리왕, 음력 8·15일 한가위… 여인들 편 나눠 '길쌈대회' 열게 해
시간 안에 옷감 많이 짠 편 이기면 진 쪽은 술·음식 마련해 대접했어요
이때 행사가 추석의 유래로 전해져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어요. 추석은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쳤음에 감사드리고, 수확한 오곡백과로 조상의 묘소에 올라 차례를 지내며, 보름달 아래 모여 축제를 벌이는 날이에요.
추석(秋夕)은 한자어로 가을 저녁이란 말인데,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때는 음력 8월 15일을 일컫고요. 그래서 우리 조상은 추석을 가배, 가윗날 또는 한가위라고도 불렀어요.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한가위는 팔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고 풀이할 수 있대요. 가배라는 말은 신라에서 한가윗날에 궁중에서 하는 어떤 놀이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고요. '삼국사기'에서는 이 놀이에서 한가위가 유래하였다고 보기도 하는데 과연 어떤 놀이였을까요?
◇길쌈대회가 열리다
서기 32년에 신라의 한 임금이 나라를 이루는 촌락을 6부로 고쳐 정하고 특별한 행사를 벌였어요. 그 행사는 6부를 두 편으로 나누고, 임금의 두 딸이 각각 부에 속한 여자들과 편을 짜게 한 다음에 길쌈대회를 벌이는 것이었어요. 길쌈은 실을 내어 천 즉 옷감을 짜는 일을 말해요.
▲ /그림=이창우
대회를 벌이는 두 편의 여자들은 가을 7월 부터, 매일 새벽에 큰 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밤 열 시경에 끝냈어요. 대회를 마치고 그 결과를 판정하는 날은 8월 15일(음력)이었고요.
임금이 행차하여 어느 편이 더 옷감을 많이 짰는지를 헤아려 판정을 내리면 대회에서 진 쪽이 이긴 쪽에게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해야 했죠. 이때 노래와 춤 등 여러 가지 놀이가 어우러졌는데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하였어요.
이처럼 신라 초기에 보름달이 환하게 뜨는 음력 8월 15일에 벌어졌던 가배라는 행사가 한가위라는 신라의 큰 명절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죠. 이날이 바로 오늘날 추석이 된 것이에요.
◇신라 여인들이 부른 노래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시합에서 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탄식하는 노랫소리로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였는데, 그 노랫소리가 슬프고 아름다워 뒷날 사람이 그 곡에 노랫말을 붙이고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고 해요.
학자들은 회소라는 말을 '아소서'에 해당하는 '아소'나 '마소서'에 해당하는 '마소'로 짐작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을 모이라고 할 때 쓰는 말인 '모이소'가 아닐까 짐작하기도 해요. 안타깝게도 회소곡의 노랫말은 전해지지 않고요.
▲ /그림=이창우
그러니까 추석은 회소곡이라는 노래와 깊은 관계가 있고, 또 신라 여자들에게 길쌈대회를 벌이게 한 임금과도 관계가 있지요. 그렇다면 팔월 한가위에 길쌈대회를 벌이게 한 신라의 임금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신라 제3대 임금 유리 이사금이에요. 유리 이사금은 24년에 아버지인 남해 차차웅이 죽은 뒤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이때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지요.
◇유리 이사금은 어떤 인물인가?
남해 차차웅이 죽기 전에, 유리는 누이의 남편이자 대보라는 최고 관직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던 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탈해가 덕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며 거절했지요. 그리고 탈해는 덕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는 속설에 따라 왕이 될 사람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떡을 깨물어 잇금 즉 떡에 새겨진 치아 개수의 자국이 더 많은 사람이 누구인지 시험해보자고 한 것이죠. 그 결과 유리의 이 자국이 많아 유리가 임금 자리에 올랐어요. 이때부터 신라에서는 왕을 가리키는 칭호를 차차웅에서 이사금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해요.
또 '삼국유사'에서는 유리 이사금 때에 쟁기, 수레 등 농기구가 만들어졌고, 얼음을 보관하는 장빙고도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처럼 유리 이사금은 농업을 크게 장려했는데 길쌈대회를 벌인 것도 그런 방편 중 하나로 여겨져요. 유리왕은 어진 마음으로 백성의 삶을 돌보기도 했어요. '도솔가'라는 노래를 통해 이를 잘 알 수 있지요.
◇백성을 잘 돌본 어진 임금
28년, 유리 이사금은 궁궐 밖을 두루 돌아보다가 한 노파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이를 보고 크게 마음 아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내가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몸으로 왕위에 앉아, 백성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고, 노인과 어린이로 하여금 이토록 힘든 상황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죄이다."
그러면서 유리 이사금은 노파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밥을 주워 먹게 했어요. 그리고 관리에게 명하여 곳곳마다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과 늙고 병들어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고 양식을 나누어주고 부양하게 했다고 해요.
그러자 이웃 나라 백성이 이 소문을 듣고 신라로 옮겨오는 이가 많았죠. 또 그해에 백성의 생활이 즐겁고 편안하여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때 백성이 부른 노래가 '도솔가'라는 것이지요. '도솔가'라는 노래도 '회소곡'처럼 가사가 전해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 두 노래를 통해 신라 유리왕이란 인물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고, 백성을 얼마나 사랑한 어진 임금이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도요.
[함께 생각해봐요]
유리라는 이름의 왕은 삼국시대에 신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고구려에도 유리왕이 있었지요. 바로 고구려를 세운 주몽 즉 동명성왕의 아들로 고구려 제2대 왕이 된 유리왕이에요. 신라 유리왕 때 '도솔가'와 '회소곡'이란 노래가 생겨났다면, 고구려의 유리왕은 직접 '황조가'라는 노래의 가사를 지었어요. 고구려 유리왕은 어떤 업적을 남긴 인물이며, 그가 지은 '황조가'는 어떤 내용의 노래였을까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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