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역사] 81세에도 전쟁터 누빈 고구려 '長壽王'

bindol 2021. 11. 5. 05:33

광개토대왕 왕위 물려받은 장수왕, 97세까지 장수하며 많은 업적 남겨
북쪽 나라와 적당한 거리 유지하며 선왕이 넓힌 북쪽 영토 잘 관리해
노령에도 군사 이끌며 백제 공격… 수도 점령하며 남진 정책 성공해요

100세 시대를 맞아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처럼 정열적으로 일하는 노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요. 70~80대 나이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와 예술인들, 80~90대 나이에도 기업 경영에 앞장선 경영인 이야기가 줄을 잇고 있지요.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101세 할아버지가 출연하여 건강과 장수 비결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마라톤 등 다양한 체육대회에 70세가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참가하여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과 체력을 자랑하기도 해요.

우리 역사에서도 100세 가까이 장수하며 나이가 들어도 굳세고 건강하여 큰 업적을 남긴 왕이 있었어요. 장수하면 떠오르는 고구려의 장수왕(394~491)이에요. 그럼 지금부터 나이가 들어도 당당했던 장수왕을 만나러 고구려로 역사 여행을 떠나볼까요?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운 왕

1880년 무렵,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서 청나라 농부가 밭을 개간하다가 이끼와 덩굴에 덮여 있던 큰 돌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돌은 6m가 넘는 거대한 크기로 4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종이에 베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며 비석의 정체가 드러났죠. 그 비석은 바로 광개토대왕릉비였어요. 비석에는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광개토대왕까지 왕위를 계승한 내용, 광개토대왕 때의 정복 활동 등이 기록되어 있었지요.

 그림=이창우

비석을 세운 때는 지금부터 1600년 전인 414년 경이었으며, 비석을 세우게 한 인물은 광개토대왕의 맏아들인 거련이었어요. 고구려의 영토를 엄청나게 넓힌 광개토대왕이 삼국사기에 따르면 413년에 39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열아홉 살에 왕위에 오른 거련이 바로 고구려의 제20대 왕인 장수왕이에요.

장수라는 이름은 왕이 죽은 뒤에 신하들과 다음 왕이 그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시호(諡號)인데, 오래 살아서 '길 장(長)'에 '목숨 수(壽)'를 써서 장수왕이라 했대요.

◇중립 외교를 통해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다

장수왕은 왕위에 오른 뒤에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북쪽으로 넓힌 드넓은 영토를 잘 관리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특별한 외교 정책을 펼쳤지요. 그때까지 고구려는 북방 민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정책을 펼쳤으나 장수왕은 전쟁 대신에 외교를 통해 평화적 방법으로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려 한 것이에요.

고구려 북쪽 나라들 즉 당시 중국에서 세력을 펼치며 서로 대립을 벌이던 북쪽의 북위, 북연과 남쪽에서 유유가 동진을 무너뜨리고 세운 송나라 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면서 그들의 약점과 원하는 바를 알아차려 고구려에 유리한 외교 관계를 이끈 것이지요. 이처럼 장수왕이 북쪽 나라에 대해 펼쳤던 외교 정책을 중립 외교 또는 등거리 외교라고 불러요. 등거리 외교(等距離外交)란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각 나라에 같은 비중을 두면서 중립을 취하고 실리를 얻는 외교를 말해요. 그렇다면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대왕처럼 영토를 넓히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요?

◇남쪽으로 영토 넓히는 남진 정책을 펴다

1979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광개토대왕릉비와 닮은꼴인 비석이 발견되었어요. 비석을 덮고 있던 돌이끼를 벗기자 비석에 새겨진 글자가 나타났는데 비문 내용을 살펴보니 고구려에서 세운 것임이 밝혀졌지요. 이 비석을 충주 고구려비 또는 중원 고구려비라고 불러요. 중원(中原)은 나라 가운데에 있다는 뜻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충주 지방을 부르던 이름이에요. 학자들은 이 비석이 만들어진 때를 고구려 장수왕 때로 짐작하고 있어요. 장수왕 때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진출했음을 기념하며 세운 것으로 말이에요.

북쪽 지역이 안정되자 장수왕은 남쪽으로 눈길을 돌렸어요. 그것은 백제를 공격하여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고자 했던 것이에요. 고구려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영토 대부분이 북쪽에 치우쳐 있어 추운 날씨 때문에 농사를 짓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구려는 비옥한 땅 특히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고 소수림왕 때부터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를 남진 정책 또는 남하 정책이라고 부르지요.

◇81세에 말 타고 직접 백제 정벌에 나서다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고자 도읍지를 국내성 즉, 지금의 만주 지린성 지안현에서 평양성으로 옮겼어요. 지금 북한의 수도인 평양으로 옮긴 것이죠. 그러자 이에 위기를 느낀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으면 고구려의 남쪽 진출을 막으려고 했고요.

장수왕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과 계획을 세웠어요, 도림이라는 승려를 백제에 첩자로 보내 큰 공사를 벌이게 하여 백제의 국력을 약하게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드디어 475년에 장수왕은 흰 수염을 휘날리며 말을 타고 직접 3만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했어요.

이때 장수왕 나이가 81세였지요. 결국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를 점령하였고, 고구려의 남진 정책을 멋지게 성공시켰어요. 이처럼 장수왕은 장수하며 만 78년 동안 왕위에 있었고, 97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큰 업적들을 이루어냈어요. 젊어서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말이에요. 장수왕이 왕위에 있는 동안에 백제는 7번이나 왕권이 바뀌었다고 하니 장수왕이 얼마나 오래 왕위에 있었는지 알겠죠?

[함께 생각해봐요]

고구려의 장수왕이 97세까지 장수를 하며 78년을 왕위에 있었다면,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는 82세까지 살며 52년 동안 왕위를 지켰어요. 조선 역대 왕 중에 왕의 자리에 있었던 기간이 가장 긴 왕이었지요. 자신의 외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만드는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여러 업적을 이루어내며 조선의 부흥기를 이끈 왕이었지요. 영조가 왕위에 있으면서 이루어낸 업적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아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