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계·장생고·객주… 금융기관의 시초랍니다

bindol 2021. 11. 6. 04:37

[금융기관]

삼국시대 공동 이익 위해 만든 계 모임은 기금 빌려주고 이자 수입 얻은 '협동조합'
고려 때 사찰 장생고, '서민 금융' 역할… 조선 후기 객주는 어음 발행해 '기업 금융'

인터넷상에서만 존재하는 '인터넷 전문 은행'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 문을 열어요. 금융위원회에서 지난달 29일 두 기업에 인터넷 전문 은행 사업자 준비 허가를 내주었는데, 이 두 곳이 별문제 없이 준비를 잘하면 내년 초에 사업을 정식 허가한다고 해요. 인터넷 전문 은행이 생기면 은행 지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지점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예금 이자는 높이고 대출 금리는 낮출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옛날에도 은행 일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을까요?

가장 오래된 금융, 삼국시대 '계'

은행은 저축하려는 사람한테서 돈을 맡아 모아 그 돈이 필요한 회사와 사람들에게 빌려주거나 투자하여 돈을 불리고, 저축한 사람에게 이자를 돌려주는 일을 해요. 이처럼 돈을 빌리는 사람이나 회사와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회사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사업을 금융업이라고 하고, 금융업을 하는 기관을 금융기관이라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금융업은 '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림=이혁

계의 기원은 삼국시대 신라의 가배이지요. 기록에 따르면 32년 신라 초기 유리왕이 나라를 구성하던 6부를 둘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에게 각부에 속한 여인들을 거느리고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한 달 동안 매일 마당에 모여 길쌈을 하게 한 뒤 성적을 심사했대요. 이때 진 편이 이긴 편에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모두 함께 모여 노래와 춤을 즐기는 것을 가배라고 했고요. 부녀자들이 편을 나누어 공동 작업을 한 '가배계'를 계의 기원으로 보고 있어요. 신라 화랑들도 '향도계'라는 조직을 만들었어요. 이 모임이 금융기관 역할을 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공동으로 조직을 이루어 작업하거나 공동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는 것은 알 수 있다고 해요. 이렇게 시작된 계는 마을 사람들 모임에서 공동 재산이나 기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발전했어요. 여럿이 모아서 마련한 돈을 공동 목적에 쓰거나,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어요. 구성원 간 친목을 다지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계가 점차 돈을 다루는 금융기관으로 발전한 거예요.

남아도는 돈을 일반 백성에게 빌려준 '장생고'

 지난달 29일 금융 당국이 인터넷 전문 은행을 준비하는 두 곳에 은행을 설립하도록 준비해도 된다고 허락했어요. 한편,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돈을 보내거나 받는 일은 가능하지요. /금융감독원

고려시대 장생고도 이와 비슷한 금융 기능을 했어요. '장생'이란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받음으로써 자본을 모아서 쌓아둔다는 뜻이에요. 특히 절에서 장생고를 활용했어요. 고려시대 불교가 왕실과 귀족의 적극적 보호를 받으면서, 사찰이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재화를 모으게 되었지요. 절에서는 남아도는 돈을 자본으로 하여 일반 백성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 사찰 자체의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장생고를 설치하였지요. 서민 개개인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서민 금융기관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고려 중기 이후부터 불교계 권력이 너무 세지고 사찰이 세속화하면서 장생고 본래 뜻과는 달리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너무 비싼 이자를 받아 오히려 서민들의 경제생활을 힘들게 했어요. 나라에서는 너무 높은 이자를 받는 장생고를 금지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규모는 늘어났고, 왕실 귀족들도 따로 장생고를 설치하여 운영하기도 했대요. 백성들의 삶은 어려워지고, 나라 전체 경제도 병들었어요.

근대 한성은행, 당나귀를 대출 담보로 맡기도

조선 후기 상업 발달과 함께 객주라는 것이 성행했어요. 객주는 상인들을 상대로 숙박·운수·창고업 등을 하면서 돈을 빌려주거나 어음을 발행하며 금융에 관계된 일을 했다고 해요. 오늘날 기업 금융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근대 은행이 등장한 것은 언제쯤일까요? 1876년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고 외국에 항구를 개방한 뒤, 1878년 일본 제일은행이 부산에 지점을 냈어요. 그 뒤 여러 외국 은행이 서울과 부산, 인천 등에 문을 열었죠. 이에 자극받아 우리 민족 자본으로 1897년에 한성은행, 1899년에 대한천일은행 등이 들어섰어요.

한성은행이 서울 광교에 영업소를 두고 예금과 대출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나귀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러 온 손님도 있었대요. 당시 은행에서는 담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당나귀를 맡고 돈을 빌려주었어요. 당나귀의 원래 주인이 대출금을 갚으러 올 때까지 은행 직원들이 당나귀를 정성껏 돌봐주었대요. 빌려간 돈을 갚으면 담보를 안전하게 돌려주어야 하니까요. 그러던 때에서 1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니 세상 참 많이 바뀌었지요?

[당시 세계는?]

최초의 금융기관인 신라시대 계가 만들어진 1세기 무렵 로마제국은 정복지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는 다문화·다신교 정책으로 엄청난 번영을 누렸어요. 로마제국이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하나로 통합된 거대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교역이 활성화되고 곳곳에 도로와 항구가 발달했어요.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가 파괴한 시리아의 팔미라 유적도 이 시기 건립되었어요. 106년 로마의 교역 거점이 된 팔미라의 건축물에는 로마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고 해요. 특히 아고라·목욕탕·극장 같은 공공시설이 로마의 건축 양식과 비슷하지요.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