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가장 긴 동짓날]
백성들, 벽에 팥죽 뿌리며 나쁜 기운 쫓아
궁궐에선 달력 나눠주며 큰 잔치 열어
사신 '동지사' 따라 베이징에 간 이승훈
천주교 접하며 한국인 최초로 세례 받아
올해 기준 22일은 24절기 중 22번째에 해당하는 동짓날(음력 11월 중기)이에요. 중기란, 24절기를 나누는 기준으로서 그 달 양력 중순부터라는 뜻이랍니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지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날을 설날 다음가는 중요한 겨울 명절로 여겨 잔치를 열거나 제사를 지내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벌였어요. 동지가 이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동지가 지나면 다시 밤이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이었죠.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역설적으로 빛과 생명력이 다시 살아나는 날, 즉 죽음에서 부활하는 날로 생각된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동짓날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예로부터 팥죽 쑤어 먹고 달력 나눠주기도
조선 시대에는 동짓날이 되면 왕을 비롯해 왕세자와 모든 신하가 궁궐에 모여서 큰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회례연이라고 해요. 이때 왕은 신하들에게 관상감(조선 시대 천문·지리·기후 등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에서 올린 새해의 책력, 즉 지금의 달력을 나누어주었어요. 관상감은 날씨와 날짜에 대한 일을 했던 관청이므로 오늘날 기상청에 해당한다고 해요. 연말이 되면 새해 달력을 나눠주는 풍습이 조선 시대 궁궐에서도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 /그림=이혁
일반 백성들은 팥죽을 쑤어 가족들과 모여 맛있게 먹었어요. 이 팥죽으로 조상께 제사를 지내거나 대문이나 벽에 뿌리기도 했고요. 옛 선조들은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나쁜 기운과 귀신이 물러간다고 여겼어요.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 팥죽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해서였지요.
또한 집 안 벽이나 기둥에 부적으로 '蛇(뱀 사)' 자를 써서 거꾸로 붙이기도 했어요. 이렇게 하면 몹쓸 귀신이나 재앙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가 하면, 동짓날 즈음 조선 한양에서는 귀한 특산품들을 짊어지고 추위를 무릅쓰며 압록강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는 수백 명의 행렬도 볼 수 있었어요. 바로 동지사와 그 일행이었지요.
◇동짓날 한양 떠나 중국 가는 사신단
동지사는 조선 시대에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수도였던 베이징으로 정기적으로 보내던 사신을 말해요. 동짓날 무렵에 한양에서 출발하는 사신이라고 해서 동지사라고 불렀어요. 사신과 그 일행을 사행단이라고 하는데, 동지사의 사행단은 그 수가 보통 200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달했다고 해요. 총책임자인 정사, 정사를 보조하는 부사, 외교문서의 작성과 사신 행차 중 기록을 맡아 처리하는 서장관, 정사와 부사를 보좌하는 종사관, 통역을 맡은 통사를 비롯해 의관·군관 등 여러 직책을 맡은 관리 30여 명과 그들을 따르는 하인들, 물품을 거래하는 상인 등 많은 사람이 동행했거든요.
특히 동지사를 따라 베이징에 가서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보고 온 인물 가운데 조선 후기 실학 발달과 서양 문물 공부에 힘쓴 학자가 많았어요. '북학의'라는 책을 써서 청나라의 풍속과 제도를 소개한 박제가, 조선에서 최초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김석문이 바로 동지사를 따라 청나라에 다녀온 대표적 인물들이에요. 조선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이승훈도 동지사를 따라 베이징에 갔었지요.
◇한국인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이승훈은 유명한 실학자 정약용의 매부이자 그의 친한 친구였던 선비로, 1780년 과거 소과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했어요. 그러던 중 청나라에서 들어온 서양 사상과 선진 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 서학 모임의 중심인물이었던 천주교도 겸 학자 이벽을 만나 천주교를 알고 깊이 빠져들게 되었어요. 1783년 이승훈의 아버지인 이동욱이 동지사 사행단 가운데 외교문서를 담당하고 사신으로 가던 중 생긴 일을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하는 관리인 서장관으로 임명되었어요. 이때 이승훈도 아버지를 따라 동지사 일행이 되어 함께 베이징에 갔고, 베이징에 있는 천주교회인 북당에서 약 40일 동안 머물며 선교사들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웠지요. 이듬해인 1784년 프랑스 예수회 소속의 루이 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이승훈은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인 영세자가 되었어요. 이승훈의 세례명은 베드로였지요. 그는 천주교 서적과 십자가상을 가지고 한양에 돌아왔어요. 그 후 이벽에게 세례를 받게 해주고, 정약용의 형제들을 비롯한 서학에 관심이 많은 학자를 대상으로 천주교를 알리기도 했어요. 당시 천주교는 조선 사회에서 따르던 유교 의례와는 어긋난다는 이유로 믿는 것이 금지된 종교였어요. 그러나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교리는 중인·상인·여성을 비롯해 당시 차별을 당했던 여러 사람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어요. 조선 정부의 박해에도 천주교 신자가 계속해서 늘어났던 이유는 바로 평등사상에 있었지요.
[성탄절과 동짓날의 관계는?]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것도 동지와 깊은 관계가 있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동짓날이 지나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의 생일'로 여기고 축제를 열었어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동지를 명절로 삼았던 것과 비슷하지요? 로마가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삼은 354년 무렵, 로마교회에 의해 12월 25일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돼요. 예수를 세상의 빛으로 여기며 탄생을 축하하고 더불어 크리스트교를 전파하려 한 것이래요.
♣ 바로잡습니다
▲21일자 뉴스 속의 한국사 내용 중 조선 최초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한 사람을 홍대용이 아닌 김석문으로 바로잡습니다.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 |
'뉴스 속의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 속의 한국사] 양반은 상아·사슴뿔, 평민은 잡목으로 만들었어요 (0) | 2021.11.06 |
---|---|
[뉴스 속의 한국사]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무덤 이름 (0) | 2021.11.06 |
[뉴스 속의 한국사] 계·장생고·객주… 금융기관의 시초랍니다 (0) | 2021.11.06 |
[뉴스 속의 한국사] '잡가' 취급받던 노래, 문화재로 만든 신재효 (0) | 2021.11.06 |
[뉴스 속의 한국사] 한명회는 권력 욕심을, 이이는 지혜를 보여줬어요 (0) | 2021.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