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비]
넓은 영토 개척한 광개토대왕…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 업적 기록해
청나라 관리들 이끼 없애려 불내고 일본은 비석의 내용을 조작해 발표
고구려, 일·중 역사 왜곡 대상 됐죠
현충일 전날인 지난 5일, 국립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묘비에 한 남성이 큰 'X'자 모양으로 흰색 스프레이를 뿌려 경찰에 붙잡혔어요. 비석은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거나 특별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워져요. 그래서 이번 사건처럼 비석 글자에 낙서를 하거나 글자 자체를 깎아 훼손하는 일도 생기죠. 동아시아의 고대 역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인 광개토대왕릉비도 예전에 비석 훼손으로 몸살을 앓았다고 해요. 역사 왜곡 문제와도 연관이 있답니다.
◇1880년 이끼로 덮인 광개토대왕릉비 발견되다
1880년 청나라 지린성에서 한 농부가 이끼와 덩굴에 덮여 있는 거대한 돌덩어리를 발견했어요. 높이는 6.39m, 무게 37t이나 되는 범상치 않은 크기였죠. 이끼가 끼어 확실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비석 같았어요. 큼직한 비석이 매우 중요한 유물일 것이라고 직감한 농부는 지방 정부에 비석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렸어요.
그 후 청나라 지방 관리들이 찾아와 비석에 끼어 있는 이끼를 쉽게 없애기 위해 비석에 쇠똥을 바르고 불을 질렀어요. 이끼를 험하게 걷어내다 보니 비석의 몸에 균열이 생기고 표면이 터져 나가는 등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고 글자가 훼손됐어요. 비석의 꼭대기까지 타는 데 무려 한나절이나 걸렸어요. 비바람과 세월, 그리고 불 때문에 닳은 글자를 바로 알아보기는 어려웠어요. 비석 위에 먹을 발라서 종이에 찍어내는 '탁본'을 해야 내용을 읽을 수 있었죠.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무려 1775자나 됐어요.
▲ 그림=이혁
과연 이 비석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그의 정체는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풀이하면 '국강상 지역의 무덤에 있으며,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나라를 평안하게 했던 사랑스러운 왕 중의 왕'이란 뜻이에요. 호태왕은 고구려의 제19대 왕 광개토대왕이랍니다. 이 비석은 광개토대왕릉비였던 거죠.
광개토대왕릉비가 발견된 지린성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이 있던 곳이에요. 광개토대왕의 아들이자 고구려의 제20대 왕인 장수왕이 414년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며 비석을 세운 것이지요. 광개토대왕릉비에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출생에서부터 광개토대왕까지의 왕위 계승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어요. 영토를 크게 넓히고 국경의 정비 사업을 펼친 그의 업적도 낱낱이 써 있어요. 또 당시 전성기를 누렸던 고구려가 주변 국가들과 어떻게 싸워 이겼는지 세세하게 나와 있답니다.
◇비석 위에 적힌 문장, 역사 왜곡 표적 돼
1883년 일본은 청나라 스파이 역할을 하는 첩보 장교 사코 가게노부를 만주에 파견했어요. 그는 광개토대왕릉비가 청나라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고 비석을 찾아가 탁본을 떴어요. 사코는 이것을 일본군 참모부에 전달했죠. 일본은 이 탁본을 바탕으로 1884년 본격적으로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5년 뒤인 1889년 비석 문장 해석을 발표해요.
그런데 역사 왜곡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내용이 있었어요. '신묘년(391)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무찔러 신하의 나라로 삼았다'는 거예요. 역사학자 대부분은 '신묘년 고구려가 왜구와 백제를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하여 (고구려가 신라를) 신하로 삼았다'는 내용으로 해석해요.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여러 기록과 유물, 유적을 통해 고구려가 신라를 도와주기 위해 백제와 왜 연합군을 물리쳤다는 해석이 타당하고 정확함을 알 수 있거든요.
광개토대왕릉비 탁본 중에는 석회로 한자를 덮고 위에 다른 한자를 새긴 '석회 탁본'이 있어요. 1970년대부터 한·중·일 역사학자들은 석회 탁본이 일본군 참모부의 소행인지를 두고 논쟁해 왔어요. 중국 학자는 현지인들을 인터뷰하고 문헌 기록을 추적해 일본군과 무관한 중국인이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석회 탁본 내용이 일본의 역사 왜곡에 유리하기 때문에 정황상 일본군 소행이라는 반대되는 주장도 있지요.
일본 학계는 광개토대왕릉비 구절을 마음대로 해석한 뒤, 고대에 왜가 한반도 남부 지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해요. 4세기 후반 일본이 한반도 남부 지역인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거예요.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통치하였다고 주장하지요. 일본 학계는 이런 주장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본사' 교과서에 싣기도 했어요. 이에 대해 양심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는 지난 2010년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지요.
그런데 2015년 검정 통과된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여전히 '신라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는 등 역사를 왜곡한 내용이 실렸다고 해요. 게다가 중국 정부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 소수민족 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 정책을 펴고 있지요. 주변 나라들의 역사 왜곡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세요. 국외에 위치한 중요한 문화재도 앞으로 더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답니다.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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