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삼국시대 뛰어난 화장품 기술, 일본에 수출했대요

bindol 2021. 11. 6. 05:15

[삼국시대 화장]

고구려 여인들, 얼굴에 붉은 점 찍고 짧은 눈썹·풍성한 올림머리 유행
신라 화랑은 얼굴에 흰 분 바르며 입술·뺨 등 연지로 혈색 돌게 해

품질이 뛰어난 우리나라 화장품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생산액은 10조원을 넘어섰어요. 수출액은 약 2조원을 기록했는데, 이 금액은 휴대전화 약 1230만개를 수출한 만큼에 해당한다고 해요.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어마어마하지요? 면세점을 찾은 중화권 관광객들이 국내 브랜드에서 만든 마스크팩 10상자를 사기 위해 북적이는 일도 낯선 풍경이 아니에요. 한국 화장품 산업을 뜻하는 신조어 'K뷰티(beauty)'도 등장했어요.

오래전 삼국시대 조상님들의 화장품 기술도 일본 등 해외로 수출되었답니다. 신라, 백제, 고구려 조상님들도 우리처럼 화장을 즐겨 했거든요. 역사 유적과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아름다움과 정결함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지요. 우리 선조가 했던 화장에 대해 알아볼까요?

고구려는 붉은 점 찍고, 백제는 일본에 기술 전파

1971년 북한 평안남도 강서군 수산리에서 5세기 후반 고구려 지배 계층 부부의 고분이 발굴됐어요. 수산리 고분 벽화는 2004년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답니다. 벽화를 본 사람들이 고구려 화장을 소재로 이야기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일 거예요.

 /그림=이병익

"수산리 고분 벽화에는 얼굴에 붉은 점을 찍어 멋을 내고 입술에 불그스름한 색을 칠한 여인들의 행렬이 등장한다더군.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겠는걸." "무덤 주인 부부와 하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여성들의 모습을 살펴보니 곱게 화장을 했대. 그들이 입고 있는 아름다운 저고리와 주름이 진 색동 치마는 일본 왕실 무덤인 다카마쓰 고분의 벽화에 등장하는 옷과 비슷하다는군." "고구려 수산리 고분 벽화(5세기)와 일본 다카마쓰 고분 벽화(7세기)는 화풍이나 옷, 장신구 등이 매우 유사해. 고구려가 일본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고구려 여인들은 화장할 때 입술이나 뺨, 때로는 이마에 점을 찍었답니다. 평안남도 용강군 쌍영총 고분에서도 고구려 귀부인과 시녀들이 붉은 빛깔 염료인 연지(臙脂)로 얼굴에 점을 그린 벽화가 발견됐어요. 이들은 유행인 듯 풍성한 머리숱을 틀어올린 뒤, 눈썹 끝을 짧고 뭉툭하게 다듬었지요.

삼국시대 문화 선진국이었던 백제도 일본에 화장품 만드는 기술을 전수할 정도로 화장 능력이 뛰어났대요.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백과사전 '삼재도회'와 일본이 이 책을 본떠서 지은 '화한삼재도회'에는 "백제인들이 일본에 화장품 만드는 방법과 화장 기술을 알려주었다"는 내용이 등장해요. 백제 화장의 특징은 진하지 않고 엷다는 기록도 있지요.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투명화장과 백제 화장이 비슷했을 거라 추정해요. 285년 고이왕이 박사 왕인을 일본에 파견해 천자문 한자와 논어를 알려준 뒤로, 백제는 일본에 많은 문물을 전해줬답니다.

신라 화랑, 화장도 하고 실력도 중시해

그렇다면 남성 조상님들은 화장을 했을까요? 고조선이 멸망한 후 세워진 삼한이라는 나라에서는 남자들이 눈썹을 짙게 보이기 위한 화장이나 문신을 했대요. 신라 시대에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인 화랑(花郞)들까지 두루 화장을 했어요. 신라의 화랑 제도는 귀족 자제 가운데 용모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서 같이 수련하게 한 거예요.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렇게 기록해요.

'신라 진흥왕 37년(576년) 외모가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곱게 단장시켜, 화랑이라 이름하고 받들게 하니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쓰인 책인 '신라국기'에는 화랑들이 분을 발랐다는 내용이 있어요. '귀족 자제 중 인재를 뽑아서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하여 화랑이라 하고, 나라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섬겼다.' 화랑들은 흰 가루로 만든 분을 얼굴에 바른 뒤, 국화과 식물인 잇꽃으로 만든 연지를 이마와 입술·눈가·뺨 등에 발라 혈색을 냈다고 전해져요.

진흥왕은 화랑들의 모임을 화랑도(花郞徒)라고 하고, 화랑 가운데서도 지도자를 뽑아 '국선'이나 '풍월주'라고 불렀지요. 화랑이 아름다움을 중요시했던 까닭에 지도자는 매우 인기가 많은 인물이었어요. 그렇다면 화랑도를 정식 국가 조직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진흥왕은 신라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왕이에요. 화랑도를 만든 이유도 재주와 인기가 많은 사람들을 청소년 시절부터 뽑아 학문과 무예를 쌓게 하면서 나라에서 필요한 인재로 쓰기 위해서였어요.

화랑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수련하며 임금에게 충성하며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유교 윤리를 배웠어요. 함께 음악을 즐기고,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다니기도 했고요. 이들은 나중에 신라 조정에 관리로 등용되거나 장수가 돼 전쟁터에 나갔고,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룰 때 큰 역할을 했어요. 화랑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거든요. 김유신 장군도 화랑 출신이랍니다. '삼국사기'는 신라 화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요. "현명한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서 솟아 나오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