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삼국이 탐내던 곳… 아리수·한산하·욱리하로 불렀어요

bindol 2021. 11. 6. 05:21

[한강]

넓은 평야와 무역에 유리한 한강
남진정책으로 고구려가 차지했지만… 신라, 백제와 힘을 합쳐 빼앗아

고려 땐 '열수' 라고 불러
한양에 도읍 옮긴 고려 공양왕, 불길한 일 터져 개경으로 환도

서울 한강공원에서는 이번 달 21일까지 한강몽땅 여름축제가 열려요. 한강 다리 밑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종이 상자로 만든 배로 한강을 건너는 경주 등이 열린대요.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함께 한강에 피서 가는 것도 좋겠죠? 한강 부근에서 벌어진 여러 역사적 사건을 알고 가면 피서가 더 즐거울 거예요.

한강 동쪽 암사동 선사 유적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한강 근처에 마을을 이뤄 살았대요. 바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 유적지에 그 흔적이 남아있어요. 당시 암사동에 터를 잡은 조상님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요? "와! 강 주변에 갈대밭과 너른 땅이 펼쳐져 있네. 여기서 살면 물고기 잡기 좋겠어." "땅이 딱딱하지 않아 집 짓기도 좋고, 진흙을 구해 토기 만들기도 편하고." "그럼 우리 이곳에 움집을 짓고 살까?"

 /그림=이병익

암사동에서 신석기 유물이 처음 발견된 건 일제강점기인 1925년이었다고 해요. 당시엔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해, 막연히 오래된 것이라고 여겼는데 1966년부터 정식으로 연구가 이뤄져 신석기시대 유적임이 밝혀졌어요. 연구팀의 추가 조사에 따라 암사동 유적 집터에는 예전에 움집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답니다. 움집이란 나뭇가지와 갈대· 가죽으로 만든 신석기시대의 집이에요. 땅을 움푹하게 파서 공간을 만들었고 중간엔 화덕을 뒀지요. 물론 한강 근처에서 신석기시대 유적만 발견된 것은 아니에요. 한강의 지류 중랑천 근처 면목동에선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돼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나타내주지요.

삼국의 한강 쟁탈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고 으르렁대며 힘겨루기를 했어요. 재미있는 건 고구려, 백제, 신라 백성들이 각각 한강을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는 거예요. 고구려에선 '아리수', 백제에선 '욱리하', 신라에서는 '한산하'라고 불렀어요.

고대 한강 유역은 백제 땅이었어요.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475년까지 '욱리하' 주변의 위례성을 수도로 삼아 세력을 키웠어요. 거의 500년에 이르는 동안 한강 유역은 백제 것이었어요.

그러나 고구려가 '아리수'를 백제로부터 빼앗아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려는 남진 정책을 펴면서, 백제는 한강 영토를 점점 고구려에 빼앗기게 돼요. 고구려는 한반도 서북부에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와 성을 함락해가며 한강 유역을 압박했어요. 광개토대왕은 한강 이북의 여러 백제 성을 함락했고요. 그 후 아들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475년 한강 유역을 정복했어요.

한편 신라는 '한산하'를 차지해 고구려·백제를 제치고 삼국 중 가장 힘센 나라가 되겠다는 야망이 있었어요. 551년 신라는 백제와 힘을 합쳐 고구려로부터 한강 유역을 빼앗았어요. 신라는 한산하를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백제마저 억누른 뒤 중국과 통하는 해로를 얻었어요.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는 삼국 통일의 꿈을 실현했답니다.

삼국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툰 이유는 한강 유역이 매우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한강은 한반도의 중앙을 꿰뚫고 흐르는 큰 강이에요. 한반도 가운데 있으니 남북으로 세력을 펼치기도 좋았지요. 한강 유역 주변의 넓고 기름진 평야에서는 많은 곡식을 재배할 수 있었고, 뱃길을 이용해 물건과 사람이 쉽게 오갈 수 있었어요. 한강을 통해 배를 타고 한반도 서쪽에 위치한 황해로 나가면 중국과 무역하기에도 편리했어요. 이렇게 장점이 많았던 까닭에 한강 유역을 삼국 중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달라졌던 거예요.

한강의 또 다른 이름 '열수'

고려 사람들은 한강을 '열수(冽水)'라고 불렀대요.열수란 물이 맑고 차가운 강이라는 뜻이지요. 서울은 '한양군' 또는 남쪽의 중요한 도시라는 뜻으로 '남경'이라 불렀어요. '열수가 흐르는 남경'은 '예성강이 흐르는 수도 개경(현재 개성)'이나 '패강(대동강)이 흐르는 서경(평양)'만큼 중요한 도시였다고 해요.

1390년 9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어요. 남쪽에 한강이 있어 주변의 평야 지대에서 농사짓기에도 좋다는 이유였지요. 그러나 수도를 옮긴 뒤 큰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일고, 궁궐에 큰 호랑이가 뛰어들어 피해를 주는 불길한 일이 자주 일어났어요. 결국 고려 왕조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지 다섯 달 만에 개경으로 환도했지요. 그로부터 3년 뒤인 1394년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우고 북한산과 한강으로 둘러싸여 풍수지리가 뛰어난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