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법과 도량형]
길이·부피·무게 재는 단위 '도량형'
기장 100알 길이 1척으로 기준 삼아… 세종대왕 때 박연이 '황종척' 개발
도량형 바꿔 백성 착취한 탐관오리, 암행어사가 놋쇠 자로 감시했대요
'포켓몬 고(Pokemon Go)'라는 게임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대단하다고 하지요? 미국에서는 '포켓몬 고' 게임을 하려고 수백만 명이 '미터(m)법'을 익히고 있다고 해요. 포켓몬 고는 거리를 미터로 보여주는데, 미국에서는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미터 대신에 피트(ft), 야드(yd)와 마일(mile) 같은 단위를 사용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는 1902년에 미터법이 도입되었고 1963년부터 법으로 모두 미터법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죠. 그럼 미터법이 사용되기 전에는 어떻게 거리와 길이를 재고 표기했을까요? 오늘은 우리 조상이 사용했던 '도량형(度量衡)'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도량형은 '길이, 부피, 무게'
도량형이란 '길이와 부피, 무게를 재는 단위'를 말해요. 한자에서 비롯된 말로 도(度)는 물건의 길이를 재는 '자', 량(量)은 곡식의 부피를 재는 '되'나 '말', 형(衡)은 무게를 재는 '저울'을 뜻하지요. 길이·부피·무게를 재는 기구를 '도량형기'라고 불렀답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 단위는 약 3000년 전 중국의 주(周)라는 나라에서 사용한 '주척'이에요. 1주척은 20㎝ 정도 된답니다. 그 후 중국 한나라 때 '한척(1한척·약 23.7㎝)'이라는 단위가 만들어졌고, 당나라에서는 당대척(1당대척·약 29.7㎝)을 만들어 길이를 재는 데 이용했어요.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나름의 도량형을 만들어 사용했어요. 고구려는 한나라에서 사용하던 한척 대신에 35.6㎝를 1척의 단위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고구려척'이라 불러요. 신라에서는 중국의 주척을 가져와 그대로 사용하다가 통일신라부터는 주로 당대척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돼요. 고려 시대에도 주척과 당대척을 주로 사용하였다고 해요.
◇황종관의 길이를 잰 '황종척'
이렇게 여러 단위를 사용하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길이 단위가 만들어진 건 바로 조선 시대예요. 주인공은 바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신하 박연이랍니다.
"박연, 자네가 중요한 일을 맡아서 해주어야겠네. 바로 우리 궁중 음악을 제대로 정리하는 일이네."
"알겠사옵니다. 우선 12음계의 기준음이 되는 황종 소리(서양 음계의 '도(C)'와 비슷한 음)를 내는 황종관을 만들겠사옵니다."
"그렇지. 황종관을 만드는 동시에 도량형의 기준도 새로 정하면 좋을 듯하군."
세종대왕의 지시를 받은 박연은 황종관을 만들고, 황종관의 길이를 재는 기준도 정하였어요. 이게 바로 '황종척'이라는 단위이지요.
▲ 그림=이병익
박연은 '기장'이라는 곡물 중 크기가 중간 정도의 것을 골라 100알을 나란히 놓은 길이를 1척(1황종척)으로 정했어요. 황종척 1척의 길이는 대략 34.48㎝ 정도에요. 그리고 황종척을 10등분 한 것을 '1촌', 1촌을 10등분 한 길이를 '1분'으로 했어요. 10척은 '1장'으로 정하였답니다.
이후 황종척을 기준으로 관청 건물이나 배나 수레를 만들 때 사용한 '영조척',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그릇(예기)을 만들 때 적용한 '예기척', 옷감을 사고팔거나 옷을 만들 때 사용된 '포백척' 등 여러 가지 '척'이 쓰임새에 따라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해요.
우리 조상은 우리말로 촌을 '치'라고도 부르고, 척은 '자'라고도 불렀어요. 그리고 8~10자 정도로 되는 길이를 '1길'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우리 속담 중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여기서 말하는 길이 바로 길이를 표현하는 '길'이랍니다.
◇놋쇠 자 2개로 백성을 보살핀 암행어사
우리 조상들은 부피를 측정할 때 홉(合)·되(升)·말(斗)·섬(石)이라는 단위를 사용했고, 무게를 잴 때에는 관·근·량·돈 4개의 단위를 사용했다고 해요. 이렇게 길이, 부피, 무게를 재는 도량형은 세금을 매기고 걷거나 물건을 사고팔 때 매우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어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단위를 쓰게 되면 서로 얼마의 돈과 물건을 주고받을지 가늠하기 어렵겠지요?
탐관오리들은 이 도량형을 마음대로 바꾸어 백성의 곡식과 돈을 마구 빼앗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정한 도량형을 사용하도록 하고, 지키지 않으면 무거운 벌을 내렸어요. 예로 조선 시대 임금은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마패와 함께 '유척'이라고 부르는 놋쇠로 된 자 2개를 주었다고 해요. 유척을 가지고 마을 사또들이 도량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도록 한 것이죠.
한 개의 자는 세금을 걷을 때 쓰는 도량형을 함부로 바꾸지 않았는지 단속하는 데 썼다고 해요. 또 다른 자는 죄인을 매질하는 기구의 크기를 재는 데 사용했어요. 탐관오리들이 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큰 매를 만들어 백성들을 가혹하게 매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죠. 이렇게 '유척'은 도량형을 측정하던 도량형기이자 백성을 보살피는 수단이었던 거예요.
지호진·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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