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청룡기'가 우리나라 국기 될 뻔 했대요

bindol 2021. 11. 7. 04:28

[태극기]

군사 목적으로 쓰인 고대 시대 깃발
전쟁서 아군·적군 구분하거나 부대끼리 신호 보내기 위해 사용
서양과 외교 관계 맺으며 국기 제작
청나라, 조선 국기로 '청룡기' 요구… 고종, 거부하며 '태극기' 국기 채택

1910년의 오늘(8월 29일)은 우리가 제국주의 일본에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날이에요. 국가가 치욕을 당한 날이라는 의미에서 '국치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날 이후 국권을 되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의사와 열사가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지난 광복절에 했었지요? 국권을 빼앗기면서 우리 민족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國旗)인 태극기도 쓸 수 없게 되었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1등을 했던 고 손기정 선생도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어야 했죠.

그래서 순국선열들은 일제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가슴속에 태극기를 꼭 품고 있었다고 해요. 거사 후에 태극기를 휘두르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던 것이죠. 일본군 장군들을 물통 폭탄으로 처단한 윤봉길 의사도 거사 전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태극기는 언제 처음 만들어진 것일까요? 옛 조상들이 살던 조선과 고려, 삼국시대에도 국기가 있었을까요?

◇군사용으로 쓰였던 '깃발'

우리 역사에서 깃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와있어요. 금관가야를 세운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서기 48년 붉은 기를 휘날리며 배를 타고 가야에 왔다는 내용이에요. 이처럼 우리 조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깃발은 사용했지만, 사실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사용한 건 1880년 이후였어요

그전에 우리 조상은 국기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용도로 깃발을 사용했어요. 다른 사람을 향해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봉황·용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을 깃발에 그려 넣어 왕이나 귀족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어요.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차할 때 이런 깃발을 사용해 왕의 위세를 과시하는 데 사용했답니다.

깃발은 군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됐어요. 전쟁에서 우리 편과 상대편을 구분하거나, 우리 편 안에서도 부대끼리 서로를 구분하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 깃발을 사용했답니다. 사극에 나오는 깃발들도 국기가 아니라 사실 그 군대가 어떤 군대인지 나타내는 깃발이에요.

백제가 전성기를 이루던 근초고왕 시대의 일이에요. 당시 백제에는 '사기'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백성이 살고 있었답니다. 어느 날 사기가 나라에서 쓰는 말의 발굽을 다치게 하고 말았어요. 당시 말은 아주 비싸고 귀한 것이었답니다. 조선시대에도 훌륭한 말의 1마리 가격이 남자 노비 5명 정도의 가격과 같았다고 해요. 이렇게 귀한 말의 발굽을 다치게 한 사기는 큰 벌을 받을까 겁을 먹고 이웃 나라인 고구려로 도망쳤어요.

그런데 396년,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2만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고구려에 도망쳐 살던 사기가 백제를 정벌하기 위한 고구려군의 병사로 동원되었어요. 사기로서는 졸지에 자신의 모국을 공격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죠.

비록 죄를 지어 달아났지만, 차마 모국을 공격할 수 없었던 사기는 고구려군 진영을 몰래 빠져나와 백제군에게 항복하였어요. 이때 사기는 백제에서 말을 다치게 한 죄로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웠는지 고구려군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왔답니다.

"고구려군이 2만명이나 되지만 실제 정예부대는 몇 명 되지 않사옵니다. 그 정예부대는 붉은색 깃발을 들고 있으니, 붉은색 깃발을 든 병사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사기의 말을 들은 백제의 사령관은 붉은 깃발을 든 고구려의 정예부대를 집중 공격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요.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부터 조선을 지킨 이순신 장군도 깃발을 이용해 휘하 장수들과 병사들을 지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답니다.

◇고종 "청룡기 대신 태극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가 처음 만들어져 사용된 것은 언제였을까요? 한동안 최초의 태극기는 1882년 9월 임오군란 이후 일본에 파견된 사신 박영효가 배 안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어요.

 그림=이병익

그런데 임오군란보다 넉 달 앞선 1882년 5월, 미국 군함 위에서 조선과 미국이 통상조약을 맺을 당시 태극기가 걸렸다는 기록이 새로 발견되었어요. 당시 미국 측에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조약에 가져올 것을 요구했고, 이에 고종의 지시를 받은 조선의 관리들이 태극기를 그려 가져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발견된 책에는 미국 군함에서 조약을 맺을 당시 미국의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던 풍경과 태극 문양 4괘가 들어간 태극기의 모습을 묘사해두었다고 해요.

국기를 쓰지 않던 조선이 태극기를 국기로 만들게 된 배경은 1880년 전후로 서양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서양 국가들이 조선을 상징하는 국기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지만 조선에는 국기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때 청나라는 조선에 "청나라의 국기인 황룡기를 모방한 청룡기를 조선의 국기로 하라"고 요구했어요. 중국에서는 황색이 '중앙'을 상징하고 청색은 '동쪽'을 상징하니, 조선이 청룡기를 쓰면 서양 국가들 눈에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이를 간파한 조선의 임금 고종은 청나라의 요구를 거부하고 1883년 태극기를 조선의 정식 국기로 택했어요. 이후 여러 번 모습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1948년 제헌국회에서 지금의 태극기를 우리나라의 국기로 공식 지정하면서 오늘날까지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로 자리 잡고 있답니다.

윤형덕 하늘고 역사 담당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