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시대 '한글 명필'은 왕비 모신 궁녀였어요

bindol 2021. 11. 6. 05:25

[우리 역사 속 명필 이야기]

조선 궁궐에서 한글 쓴 '서사상궁' 신정왕후 모신 이담월이 최고 명필
신라시대 '해동의 서성' 김생과 조선 외교문서 썼던 한석봉 글씨… 중국 관리들이 사정하며 얻어 가

교육부가 내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한글 교육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어요. 한글 쓰기 공부와 읽기 교육을 두 배로 늘리고, 특히 '악필(惡筆)'인 어린이를 줄이기 위한 글쓰기 교육을 늘릴 거라고 합니다. 악필은 글씨도 삐뚤빼뚤 엉망으로 쓰고 맞춤법도 곧잘 틀리는 것을 말해요. 최근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어린이들이 한글을 종이에 정확하게 쓰는 일이 줄어들면서 악필인 어린이도 부쩍 늘었다고 해요.

우리 조상들은 글씨의 모양으로 그 사람의 재능과 성격, 품격을 판단했어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해서 관리를 뽑을 때에도 지원자의 행동거지와 말투, 그리고 글씨를 보았지요. 오늘은 글씨를 아주 잘 쓰는 명필(名筆)로 이름을 떨쳤던 우리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중국 관리도 감탄한 '해동의 서성'

김생은 711년에 태어난 통일신라시대의 인물로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쓴 것으로 유명했다고 해요. 평생 서예에만 몰두해 8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 글씨체를 두루두루 잘 써 후세의 사람들은 김생을 '해동의 서성'이라 부르며 그가 쓴 글씨를 보물처럼 여겼대요. 해동(海東)은 우리나라를, 서성(書聖)은 글씨를 빼어나게 잘 쓰는 사람을 높여서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림=이병익

'삼국사기'에 김생의 글씨에 얽힌 이야기가 나와요. 고려 숙종 때 홍관이라는 고려 관리가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을 때의 일이에요. 홍관을 찾아온 송나라 관리들에게 홍관이 김생의 글씨를 보여주자 "오늘 이곳에서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보게 될 줄 몰랐다"며 깜짝 놀랐다고 해요. 왕희지는 고대 중국의 진(晉)나라 때 인물로 중국 역사상 가장 글씨를 잘 쓴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에 홍관이 "이건 왕희지가 쓴 글씨가 아니라 옛 신라 사람인 김생이 쓴 것"이라고 대꾸하자 송나라 관리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하에 왕희지 말고 어찌 이런 신묘한 글씨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 김생의 글씨는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고, 고려를 찾는 중국 사신들은 김생이 쓴 글씨를 사정사정해서 얻어갔다고 해요.

◇조선의 외교문서를 썼던 한석봉

조선시대에도 김생처럼 왕희지에 견줄 만한 명필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한석봉'으로 유명한 한호예요. '석봉'은 한호를 편하게 부르는 이름인 그의 '호(號)'랍니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 때 인물인 한호는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히 글쓰기 공부를 하였어요. 한호도 김생처럼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뛰어난 명필로 인정을 받았는데, 한호가 당시 조선의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지요.

한호가 쓴 외교문서를 본 중국 관리들은 한호의 글씨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어요. 명나라의 유명한 학자 왕세정은 한호의 글씨를 보고 "성난 사자가 돌을 헤치는 것 같고, 목마른 말이 물가로 달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고, 명나라의 사신으로 조선에 왔던 주지번도 "한호의 글씨는 왕희지와 다툴 만하다"며 칭찬했어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왔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마귀, 등계달 등도 한호의 글씨를 사정해서 얻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선조도 한호의 글씨를 아주 좋아했다고 해요. 그래서 한호에게 천자문을 책으로 쓰게 한 뒤 전국에 배포해 글씨를 배우는 아이들은 모두 한호의 글씨를 따라 쓰게 하였다고 해요.

◇한글을 아름답게 쓴 서사상궁 이담월

그런데 김생과 한호는 한글이 아닌 한자를 잘 썼어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했지만, 이미 중국의 문화에 익숙했던 사대부들이 여전히 한글 대신 한자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죠.

사실 한글을 잘 쓰기로 이름난 '한글 명필'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서사상궁 이담월입니다. 당시 조선 궁궐에서는 사대부들이 잘 쓰지 않는 한글을 권장하기 위해 왕이 내린 명령이나 왕실의 편지 등을 한글로 쓰도록 했어요. 상궁은 조선의 궁궐에 있던 궁녀에게 내리는 벼슬인데, 서사상궁은 왕비나 공주를 대신해 한글로 편지나 글을 쓰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에서 후기 무렵에는 한글을 쓰기에도 편리하고, 보기에도 단정한 '궁체'라는 새로운 글씨체가 만들어졌어요. 한글 쓰기에 열중했던 서사상궁들도 이 궁체로 아름다운 한글 글씨를 남겼는데, 이 중 특히 '명필'로 알려진 사람이 바로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를 모신 이담월이라는 서사상궁이에요. 이담월은 신정왕후를 대신해 여러 장의 편지를 적었는데, 이 편지에 남은 이담월의 글씨를 본 후세 사람들이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이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손 글씨를 쓰면 뇌세포가 많이 자극되어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우리 손은 54개의 뼈가 관절로 연결된 섬세한 부위라 다른 신체 부위보다 뇌로 연결되는 신경망이 많기 때문이죠. 어린이 여러분도 명필이었던 우리 조상들을 떠올리며 두뇌 발달에 좋은 손 글씨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