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 임상옥]
인삼 무역 독점한 의주 상인 임상옥
홍삼값 깎으려 불매운동 벌어지자 가져온 홍삼에 불 질러 위기 돌파
왕실보다 많은 재산 있었지만 욕심 경계하며 선행 베풀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THAAD) 배치가 시작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중국 측의 보복성 경제 조치도 이어지고 있어요. 한국무역협회가 중국을 상대로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 597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9%가 "사드를 겨냥한 중국의 경제 조치로 부정적 피해를 보았거나 3개월 이내에 피해가 날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사드를 배치할 장소를 제공한 기업을 상대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대요.
200여 년 전 중국 청나라 수도 베이징에서도 조선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어요. 조선 후기 무역상이자 당대 최고 거상이었던 임상옥(1779~1855)을 겨냥해 청나라 상인들이 하나로 뭉친 것이었죠.
◇홍삼값을 깎으려는 청 상인들의 불매운동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임상옥은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가서 인삼을 팔고, 돌아올 때 비단을 사 조선에서 되파는 보따리장수였답니다. 그렇게 만주어와 중국어, 장사를 배운 임상옥은 의주 상인 '만상'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국경 지대 인삼 무역권을 독점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어요. 당시 조선 왕실에 비축된 돈이 42만냥이었는데, 임상옥이 인삼 교역으로 번 돈이 약 100만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임상옥이 이렇게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청나라 상인들의 불매운동을 슬기롭게 이겨낸 덕분이었어요.
▲ /그림=정서용
1821년, 임상옥은 다른 만상과 함께 조선 사신 수행원으로 베이징에 도착했어요. 당시 임상옥은 수행원 자격으로 청나라 상인과 무역해 돈을 벌었답니다. 청나라와 무역을 하려면 반드시 사신 왕래를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특히 임상옥이 조선에서 가져간 홍삼(수삼을 쪄서 말린 붉은 인삼)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붉은빛의 보배'라고 할 정도로 명성이 높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청나라 상인들이 홍삼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늘 높은 가격에 불티나게 팔린 홍삼이라 잔뜩 가져갔는데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임상옥이 사정을 알아보게 하자 "청나라 상인들이 불매 동맹을 맺은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아무도 임상옥의 홍삼을 사지 않고 버티면, 임상옥이 어쩔 수 없이 홍삼 가격을 많이 깎아서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청나라 상인들이 한데 뭉친 것이죠.
◇홍삼에 불을 질러 더 큰 이득을 남기다
그렇게 청나라 상인들은 불매 동맹을 유지하며 "헐값에 홍삼을 팔겠다"는 임상옥의 제안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조선 사신 일행이 귀국할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임상옥은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았답니다. 사정이 궁금해진 청나라 상인들이 임상옥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았더니,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왔어요.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임상옥이 객사 마당에서 홍삼을 모두 불태우고 있습니다!"
청나라 상인들은 그길로 우르르 임상옥이 머무르는 객사로 달려갔어요. 그러자 정말로 임상옥이 의주에서 가져온 홍삼을 모아놓고 불에 태우고 있었어요. 이미 쌓아둔 홍삼 중 절반 정도는 다 타서 쓸 수 없게 된 상태였지요. 당황한 청나라 상인이 "그 귀한 홍삼을 태워 버리다니 미친 것 아니오?" 하고 묻자 임상옥은 의연히 이렇게 답했습니다.
"만리타국에 힘들게 가져온 물건을 제값도 못 받고 파느니 차라리 불태워 없애버리는 것이 낫소."
임상옥의 대답에서 진심을 느낀 청나라 상인들은 그제야 태도를 바꾸어 임상옥에게 사정하기 시작했어요. "값은 얼마든지 쳐줄 터이니 어서 홍삼에 붙은 불을 끄시오. 우리가 잘못했소."
청나라 상인들은 이번에 홍삼을 사지 못하면 다른 홍삼이 올 때까지 1년을 더 기다려야 했어요.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홍삼을 공급하는 가게에서 신용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이 점을 간파한 임상옥이 대담하게 홍삼에 불을 질러 청나라 상인들의 불매 동맹을 깨트려버린 거예요.
가져온 홍삼의 절반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청나라 상인들은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임상옥에게 홍삼을 사들여야 했습니다. 이 일로 임상옥은 막대한 이득을 남겼을 뿐 아니라 조선과 청나라에서 '담대한 상인'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되었어요. 임상옥이 과감한 결단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덕분이였습니다.
[임상옥이 아낀 보물 '계영배']
임상옥이 평소 곁에 두고 아끼는 물건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었습니다. 계영배는 보통 술잔과 달리 잔의 70%를 넘게 술을 따르면 밑바닥에 난 구멍으로 술이 모두 새어나가는 잔입니다.
공기의 압력차를 이용해 만들어진 계영배는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지 말라'는 뜻과 함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어요. 유학을 창시한 공자도 계영배와 비슷한 의기(儀器)를 늘 곁에 두고 보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하였다고 합니다.
임상옥은 큰 부자가 된 뒤에도 늘 계영배를 옆에 두고 욕심을 경계하며 살았어요. 동시에 가난한 사람이나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재산과 식량을 베풀었지요. 국방 수비에 필요한 군량미를 비축하거나 길을 새로 닦는 등 공공사업에도 자신의 재산을 내놓았고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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