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효종때 제주 닿은 하멜, 14년 후 돌아가 서양에 조선 알렸죠

bindol 2021. 11. 9. 04:14

[제주도로 표류한 외국인들]
조선 풍속·생활 등 담은 표류기 집필

예멘이란 나라에서는 2015년부터 치열한 내전이 벌어져 난민이 약 200만명 발생했어요. 최근 그중 500여명이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으로 받아 달라는 신청을 했지요. 정부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의 거주지를 제주로 제한하고 있기에 예멘 난민으로 인한 부담을 제주도민들만 떠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낯선 외국인이 느닷없이 제주도에 나타나 우리나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수백년 전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있었어요.

◇제주에 표착한 파란 눈의 서양인들

1653년 8월 6일 제주 목사 이원진이 조정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어요. '배 한 척이 고을 남쪽에서 깨져 해안에 닿아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보게 하였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살아남은 자는 38인이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자도 다릅니다. 파란 눈에 코가 높고 노란 머리에 수염이 짧았는데, 혹 구레나룻은 깎고 콧수염을 남긴 자도 있었습니다.'

 /그림=정서용

이 보고서에 등장한 서양인 38명은 네덜란드인 하멜과 그 일행이에요. '조선왕조실록' 중 '효종실록'에 나오는 내용이죠. 실록에는 박연(朴燕)이란 사람이 이들을 남만인(南蠻人)이라고 알려줬다고 해요. 당시 남만인은 동남아시아를 통해 동아시아에 들어온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 등 서양인들을 일컫는 말이었어요.

그 후 서울로 압송된 하멜 일행은 훈련도감이라는 군사 조직에 소속됐어요. 화포를 다루는 기술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하멜을 포함한 8명은 1666년 조선을 탈출해 일본을 거쳐 1668년 본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갔어요. 하멜은 자신이 조선에서 겪었던 14년 동안의 생활을 '하멜표류기'라는 책으로 써서 알렸습니다.

◇바다를 표류하다 제주에 온 필리핀 사람들

하멜 일행을 남만인이라고 알려준 박연 역시 네덜란드인이었어요. 네덜란드 이름은 벨테브레로 1627년 네덜란드 상선을 타고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 동료 2명과 간신히 목숨을 건져 제주도에 상륙했지요.

조선의 군사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이들도 훈련도감에 소속돼 무기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았어요. 벨테브레는 조선인으로 귀화해 박연이라는 이름을 얻고, 조선 여인과 결혼해 자녀도 낳았어요. 나머지 동료 2명은 병자호란 때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요.

그런가 하면 조선 순조 때인 1801년엔 여송국(呂宋國) 사람 5명이 바다를 표류하다 제주도에 온 일이 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전합니다. 여송국은 필리핀을 뜻해요.

조선에서는 처음에 이들과 말은 물론이고 필담도 통하지 않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었어요. 청나라 사람으로 여겨 중국 심양으로 보냈죠. 하지만 청나라에서도 자기네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 다시 조선에 이들을 돌려보냈어요.

이 여송국 사람들은 9년간 제주도에 머물다 1809년이 돼서야 정체가 드러납니다. 문순득이란 사람이 이들과 대화해 여송국 사람임을 알아낸 거죠. 그제야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에 머물렀던 조선인 어물 장수

문순득은 어떻게 필리핀어를 알고 이들과 말을 섞었을까요? 그는 당시 전라도 신안군 일대 홍어를 거래하던 어물 장수였어요. 1801년 12월 일행 5명과 함께 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현재 일본 오키나와인 유구국(琉球國)까지 떠내려갔죠. 약 8개월간 유구국에 머물던 문순득은 조선에 가기 위해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는데 이때 또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필리핀 마닐라에 닿게 됐지요. 그때부터 그는 약 9개월간 필리핀에 머물며 현지 언어를 배웠고 그곳에 전해진 서양 문물을 경험했어요. 그 후 상선을 얻어 타고 마카오, 광둥, 난징, 베이징을 거치는 긴 여정을 통해 3년여 만에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문순득은 다시 홍어를 거래하기 위해 흑산도에 들렀다가 유배 중인 정약전을 만나요. 정약전에게 자신이 세계 각국을 떠돌며 보고들은 바를 전해줬고, 정약전은 이를 토대로 '표해시말'이라는 표류기를 썼지요. 낯선 땅에 떨어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외국어를 배우고 현지 문물을 익힌 이들의 정신력이 놀랍지 않나요?


[조선 선비의 오키나와 표류기]

제주도에서 태어난 장한철은 1770년 과거 시험을 보고자 서울로 가는 장삿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류큐제도, 즉 오키나와에 표착했어요. 이듬해 일본으로 가는 상선에 구조돼 그 배를 타고 가까스로 흑산도 앞바다에 이르렀는데 다시 풍랑을 만나 청산도에 도착했지요. 이후 어렵게 서울로 가서 과거를 치렀으나 낙방했어요. 고향인 제주에 돌아온 그는 표류했던 경험을 담아 '표해록'이라는 표류기를 썼습니다. 당시 해류·수류·계절풍 등이 실려 있어 해양 지리서로서 문헌적 가치가 높아요. 제주도 삼성(三姓) 신화, 백록담과 설문대 할망 전설, 류큐 태자에 관한 전설이 실려 있어 설화집으로서도 가치가 높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