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06] 시대 변화와 지식인의 힘
1877년 메이지 일본의 신수도 도쿄에서 ‘도쿄수학회사(東京數學會社)’가 창립된다. 훗날 일본 수학회 및 물리학회의 모태가 된, 일본 최초의 근대 학회라 일컫는 학술 모임이었다. 수학과 물리학은 서구 근대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 학문이다. 이 분야에서 도쿄수학회사와 같은 연구자 중심의 아카데믹 그룹이 발족한 것은 당시 일본 지식계의 서구 문명 수용 역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학회의 초대 회장(공동)인 간다 다카히라(神田孝平·1830~1898)는 젊은 시절부터 서구의 학문·제도 탐구에 뜻을 둔 계몽사상가로, 일생에 걸쳐 학자이자 관료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일본 근대화를 설계한 인물로 손꼽히는 지식인이다. 그가 일본의 개국을 맞아 1861년 저술한 ‘농상변(農商辮)’에는 자유무역론, 비교우위론 등 서구 경제학 관점에서 통상 개방 의미를 분석하고, 농업 중심에서 탈피한 상공업·무역 진흥책 등 일본의 경제 체질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획기적 주장이 담겨 있다.
그가 메이지 유신 직전인 1867년에 집필한 ‘경제소학(經濟小學)’은 일본 근대화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경제 사상가 윌리엄 엘리스가 저술한 ‘Outlines of Social Economy’를 번역한 이 책은 서구의 경제 담론이 일본에 본격 소개되는 효시로 평가된다. ‘economy’의 번역어로 ‘경제’가 널리 퍼진 것은 이 책의 출간에 힘입은 바 크다. 일본이 ‘경세(經世)’ 관념에서 벗어나 ‘경제 시대’로 진입하는 물꼬를 간다의 탐구 정신이 텄다고 할 수 있다.
시대 전환기에는 변화의 내용과 방향을 읽어내는 지식 계층의 지남(指南) 역할이 국가 발전에 필수적이다. 근대화기(期) 일본과 조선의 격차는 결국 지식인층의 지적 역량 격차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대전환 시대를 맞은 지금, 변화에 맞추어 한국 사회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의 힘이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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