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무지개
중앙일보
입력 2021.08.12 00:20
유자효 시인
무지개
서벌 (1939∼2005)
지극히 조심스레
마음씨
가꾸신 분.
그분, 방금 막
세상
버렸나 봐.
하늘님
당신만 아시고는
색동무덤 써 주신다.
-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26
하늘님은 아신다
유난히 무더운 올여름, 아열대성 소나기가 지상을 때리고 가자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저렇게 고운 무지개가 뜨다니, 아마도 어딘가에서 ‘지극히 조심스레/마음씨/가꾸신 분’이 ‘막/세상/버렸나’보다. 그러니 하늘님께서 ‘당신만 아시고는/색동무덤 써 주’시는 게지. 사람은 속여도 하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다 알고 계시니···.
발상이 동화적이고 아름답다. 이 시조를 쓴 서벌 시인은 1965년 공보부 공모 제4회 신인예술상 문학부 시조 부문에서 ‘낚시심서(心書)’로 수석 당선했다. 그의 자필 연보를 보면 1980년 마흔두 살 이후 직장 없이 살아왔다고 돼 있다. 그의 고단한 삶은 연작시조 ‘서울’의 1에 ‘내 오늘/서울에 와/만평(萬坪) 적막을 사다’에 잘 그려져 있다. 역경 속에서도 그는 연작시조 ‘어떤 경영’ 등 현대시조사에 남을 우수한 작품들을 썼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지금의 세상살이도 팍팍하고 힘들긴 마찬가지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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