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77] ‘목탁’이 사라지는 사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 있었다. 제 무지(無知)와 몽매(蒙昧)를 깨주는 스승은 늘 고맙기만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선생(先生)’으로 부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이 단어는 ‘세상에 먼저 나온 사람’이다.
따라서 남을 높여 부르는 일반 경칭이었다. 지금의 스승이란 뜻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퍽 뒤의 일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일컫던 ‘부자(夫子)’가 스승의 호칭으로 더 일찍 자리를 잡았다. 제자들이 공자(孔子)를 그렇게 불렀던 ‘논어(論語)’ 덕분이다.
‘강석(講席)’과 ‘함장(函丈)’도 제자가 스승을 높여 불렀던 단어다. 앞은 ‘가르치는 자리’라는 뜻이고, 뒤는 배울 때 스승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거리인 장(丈·약 3m)을 가리킨다. 손짓 등이 자유로운 거리다.
문자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절, 중요한 정황을 알리는 관아의 홍보에 방울이 자주 쓰였던 모양이다. 행정 사안은 나무, 전쟁 등 군사(軍事) 소식은 쇠로 만든 방울 혀를 각각 썼다고 한다. 앞의 경우가 ‘목탁(木鐸)’이라는 말로 남아 또한 스승이란 뜻을 얻었다. 방울을 흔드는 일 ‘진탁(振鐸)’은 교직을 가리킨다.
글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인 필경(筆耕)에 견줘 남 가르치는 일을 설경(舌耕)이라고도 했다. 장막을 드리우고 가르쳤다 해서 설장(設帳)이라고도 적는다. 공들여 키운 제자를 흔히 달콤한 복숭아와 자두에 비유한다. “세상에 복숭아와 자두가 가득하다(桃李滿天下)”고 하면 많은 제자를 둔 스승의 행복감이다.
요즘 중국의 선생들이 석연찮게 자리에서 물러난다.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은 학생이 당국에 밀고(密告)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중국 선생들은 이제 제자들을 ‘복숭아와 자두’가 아닌 ‘가시나무[荊棘]’로 여겨야 할 모양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중요한 인간관계가 또 무너지는 문명의 심각한 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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