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12] 사바세계와 대통령의 공간
불교 용어인 ‘사바(娑婆)’는 속세(俗世)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있다. 사바세계는 본래 하늘, 인간,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육도(六道)를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설법의 편의를 위해 인간세계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승불교에서는 그 뜻을 ‘번뇌, 고통, 더러움으로 뒤덮여 있어 무릇 중생이 참고 견뎌야만 하는 세계’로 풀이한다. 석가가 중생을 구제하고 교화하기 위해 임하는 세계이기도 하고, 청정한 무욕(無慾)의 세계인 ‘정토(淨土)’에 대비되는 의미로 ‘인토(忍土)’, ‘감인토(堪忍土)’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사바세계의 뜻풀이는 대동소이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는 사바세계가 병영이나 형무소와 같이 폐쇄된 장소의 사람들이 동경하는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외부 세계’라는 뜻으로 쓰일 때도 있다는 점이다. 사바세계가 이러한 뜻을 지니게 된 것에 대해서는 에도시대 유곽(遊廓)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는 설이 있다.
당시 유곽에 채용된 기녀(妓女)들은 경내에 머무르며 외부 출입이 제한되었는데,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부러워하며 담장 너머의 세계를 사바세계로 부르던 것이 일반에 퍼졌다는 것이다. 욕(慾)과 정(情)에서 비롯된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렇기에 희로애락의 활기가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 모여 사는 사바세계라고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한국 사회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 현상이 심화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사바세계와 동떨어져 왕조시대 궁궐만큼이나 구중심처(九重深處)가 된 청와대의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도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새로운 정권의 출범을 맞아 대통령 집무실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대통령의 공간’을 ‘시민의 공간’과 접근시킴으로써 권력자와 시민이 생활 감각, 현실 감각을 공유하고 더 투명하게 권력이 감시되고 견제되는 ‘탈권위주의’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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