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14] 위의 정책, 아래의 대책
전근대 시기 동아시아 통치자들은 흉년⋅재해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민간 소비를 통제하려 드는 속성이 있었다. 조선 조정과 일본의 에도 막부는 나라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사치 금지령’을 발령하고는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의복 규제였다. 염색 천 소비가 늘면 환금작물 재배가 늘어나 식량작물 재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18세기 에도 막부의 사치 금령은 구체적이었다. 의복 색을 쥐색·차(茶)색·남색의 3색으로 제한한 것이다.
도시화와 상업 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일본 소비자들은 금령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옷에 대한 욕구가 여전했고, 규제를 피하고자 하는 시장의 욕망은 ‘사십팔차백서(四十八茶百鼠)’라는 색 문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사십팔차백서란 48가지 차색과 100가지의 쥐색이라는 말이다. 실제 48색, 100색이 아니라 그만큼 다채로운 연관색, 유사색이 있음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말이다. 48, 100이라는 숫자가 대변하듯이 현대 먼셀 색계를 뺨치는 그러데이션(gradation)과 중간색, 혼합색을 활용한 옷감이 속속 시장에 등장하여 유행의 사이클을 만들어 내며 일본인의 색감과 미의식을 자극하였다.
미묘한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염료 산업도 더욱 발전하였다. 염료 제조는 당시로서는 첨단 화학 산업이었다. 천연 소재를 사용하여 색 구현력과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발효, 중합(重合) 등의 공정이 발전하였고, 염료의 원료가 되는 환금작물에 대한 수요도 증가 일로를 걸었다. 규제 안에서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는 시장의 적응 앞에 규제는 별 소용이 없었다. 중국에는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있다.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가 있으면 민간은 알아서 먹고살 길을 찾는다는 뜻이다. 꼭 필요한 규제는 그 이행을 엄정하게 담보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혁파하여 민간의 창의성을 북돋는 것이 좋은 정부의 덕목임은 동서고금에 공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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