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64] 화폐의 기본은 신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도 자기가 피해자인 듯 억지를 부린다. 일본도 그랬다. 동학농민운동의 진압을 위해 조선이 청나라에게 지원병을 요청하자 일본이 펄펄 뛰었다. 톈진조약이 묵살되었다면서 조선이 원치 않는데도 파병했다. 청일전쟁(1894년)이 시작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37년 베이징 외곽의 일본 관동군 부대에서 병사가 실종되자 일본은 그것을 중국의 도발로 단정했다. 그리고 베이징 시내를 향해 진격했다.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이다. 하지만 그 병사는 멀쩡했다. 이쯤 되자 중국이 각성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중단하고 손을 잡았다. 마오쩌둥이 이끌던 공산당 홍군이 국민당 휘하의 팔로군으로 합류했다. 제2차 국공합작이다. 중일전쟁의 시작이었다.
전쟁 중에는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쉽다. 지금의 러시아 루블화가 그 증거다. 하마터면 위안화도 그럴 뻔했다. 중국은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래 외국과 무역하며 은을 쌓아 왔지만, 20세기 들어 서양은 더 이상 은을 돈으로 여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공황이 시작되어 은값은 바닥을 모르고 폭락했다. 위안화의 신뢰가 떨어지는 가운데 중국은 허둥지둥 은을 처분하기 바빴다. 아시아에서 중립을 지키던 미국에 “제발 은을 국제 가격보다 비싼 값으로 사 달라”고 졸랐다. 미국이 그 부탁을 들어주자 위안화 환율이 안정되었다.
일본 관동군은 화폐의 생리를 몰랐다. “화폐는 일단 뿌리면 세력이 붙는다”는 미신을 따랐다. 그래서 친일파 왕징웨이(汪精衛)를 통해 ‘난징 국민정부’라는 괴뢰정권을 세우고 마구 돈을 찍었다. 그 돈의 가치를 믿는 사람은 없었고, 괴뢰정권은 작동하지 않았다. 일본왕이 관동군 사령관을 불러 “돌대가리”라고 꾸짖었다. 야단맞은 사령관은 “전쟁에서 이기고 화폐 전쟁에서 졌다”며 땅을 쳤다. 화폐의 기본이 신뢰라는 것을 몰랐던 관동군이 1940년 오늘 괴뢰정권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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