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62] 공산혁명과 맞바꾼 철도 건설

bindol 2022. 3. 16. 04:37

[차현진의 돈과 세상] [62] 공산혁명과 맞바꾼 철도 건설

입력 2022.03.16 00:00
 
 

냉탕과 온탕에 몸 담그기를 반복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국가도 그렇다. 19세기의 제정 러시아는 공포정치와 자유주의를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공산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나폴레옹이 뿌려놓은 법치주의와 시민 평등사상이 러시아에도 밀어닥쳤다. 니콜라이 1세는 러시아의 군주제도가 붕괴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구체제를 수호하는 ‘유럽의 헌병’임을 자처하고 공포정치로 일관했다. 그 아들 알렉산드르 2세는 정반대였다. 병역 부담을 줄이고 검열을 폐지했으며 러시아의 근대화를 위해서 농노까지 해방했다. 미국보다 빨랐다. 그러자 기득권을 빼앗긴 귀족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까지 그를 싫어했다. 개혁이 너무 느리다는 이유로 그에게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그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3세는 아버지를 죽인 자유주의자들에게 이를 갈며,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전제군주제를 강화하고 반대 세력은 잔인하게 처형했다. 공산혁명의 주인공 블라디미르 레닌의 친형도 그에게 처형당했다. 정치를 후퇴시킨 알렉산드르 3세가 경제 근대화에는 관심이 많았다. 드넓은 국토 개발을 위해 특히 철도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크림전쟁 때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화해하고 프랑스 차관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공사를 시작했다. 그는 죽으면서도 아들 니콜라이 2세에게 횡단철도 완성을 유언으로 남겼다.

10년 뒤 마침내 그 유언이 성취되었다. 그러자 그 노선의 중요성을 간파한 일본이 자기들의 만주 철도와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1909년 10월 26일 코코프초프 러시아 재무상이 일본과 담판하려고 하얼빈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회담은 무산되었다.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했다. 1881년 3월 13일 알렉산드르 3세가 황제에 올랐다. 그는 물질적 근대화에 집착했지만, 정치 근대화는 외면했다. 거기서 공산혁명이 잉태되었다. 경제 발전 못지않게 정치 발전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