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격안관화는 전국책(戰國策)의 ‘휼방상쟁(鷸蚌相爭) 어옹득리(漁翁得利)’에서 유래됐다.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알려진 이 고사를 두고 당의 선승 건강(乾康)이 지은 시다.
격안홍진망사화(隔岸紅塵忙似花), 당헌청장냉여빙(當軒靑嶂冷如氷). 건너편 언덕의 단풍은 꽃처럼 피어나는데, 집 앞의 가파른 푸른 산은 얼음처럼 차갑구나. 홍진의 화려함을 얼음처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상대의 싸움을 지켜보는 책략가의 날카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중봉광록(中蜂廣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생각이 은밀하면 행동도 은밀하다. 수행이 깊으면 깨달음도 역시 깊다.”
불교의 ‘삼매(三昧)’는 잡년이 제거된 몸과 마음의 평정을 가리킨다. 이 경계에 이르면 사물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사물을 좋은 것과 나쁜 것, 적과 친구, 손실과 이익, 선과 악 등으로 단순히 양분한다. 그러나 삼매에 이른 사람은 사물의 본질에 따라 마음을 정할 뿐, 흑백논리로 판단하지 않는다. 우주는 무한한 공간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나의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지구가 작은 먼지라면 거기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체는 더욱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무한대로 계속되는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감안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 이러한 생명체인 인간이 부귀공명과 잇속을 챙기기 위해 노력한들 그것은 눈앞에 피어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연기와 같다. 송의 소동파(蘇東坡)는 “만상은 허무한 환상에 불과하므로 도통한 사람은 거기에 달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유명한 ‘전적벽부(前赤壁賦)’에는 달관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천지간을 떠도는 하루살이와 같고, 창해에 떠 있는 한 알의 곡식과 같으니, 내 삶이 너무도 짧은 것이 서글퍼서 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했지만, 하늘을 나는 신선과 함께 놀며 밝은 달을 품에 안고 오래도록 살고 싶었도다…. 천지간에 만물은 각자 주인이 있지만, 내가 가진 것은 진실로 하나도 없으니 비록 하찮은 것 하나도 가질 수 없구나. 오로지 강 위에 부는 맑은 바람과 산간에 떠오른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모습이 되니, 가지려면 누구도 막지 못하고, 아무리 써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이야말로 조물주가 무진장 만들어 놓은 것이니 그대와 함께 마음껏 즐깁시다.”
남편 유방이 죽은 후 여후(呂后)가 권력을 장악했다. 친정 일족을 제후로 봉하고, 어린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켜서 유씨의 천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것을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던 우승상 진평(陳平)은 무능함을 자책하며 오랫동안 침묵했다. 친구인 육가(陸賈)가 찾아왔다.
“자네는 부귀영화가 극에 이르렀네. 그런데도 걱정만 해서 되겠는가?” “무슨 좋은 계책이 있는가?” “천하가 안정되려면 승상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하고, 천하를 위기에서 구하려면 장군은 고통을 참아야 한다네. 장군과 재상이 서로 힘을 합쳐 국가의 안위를 결정하려면 주요한 권한이 장군과 재상의 손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발(周勃)과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네.” 육가의 건의를 받아들인 진평은 주발에게 5백금을 보내 축수하고 연예인들과 좋은 술까지 보냈다. 주발도 거기에 보답했다. 친해진 진평과 주발은 마침내 여씨의 발호를 억누르고 천하를 유씨에게 돌려줬다. 이미 부귀영화를 손에 넣은 진평이 그것에 만족했더라면 여씨의 발호를 짐짓 모른 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냉정한 눈으로 조용히 사태의 변화를 관망하고 있다가 일생에 마지막 모험을 걸었던 것이다. 격안관화의 핵심인 ‘이정제동(以靜制動)’ 즉 정으로 동을 제압하는 당대 최고의 지략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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