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131] 사무송(使無訟)이 정치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검찰총장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논어’에 있다.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두 구절이다.
먼저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마디도 안 되는 말로 판결을 내려도 사람들이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는 자는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일단 말로 내뱉으면 묵혀두는 일이 없었다.” 오늘날로 치자면 유능한 법률가라 하겠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송사를 듣고서 결단을 내리는 일은 나 자신이 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정작 내 관심은 송사 처결을 잘하기보다는 반드시 송사를 처음부터 하지 않도록 하겠다.”
사무송(使無訟), 즉 송사를 없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다. 지난 5년 우리는 지겹게 모든 것을 법률로 끌고 가는 대통령을 보았고 법무장관들을 보았다. 이건 법치와는 전혀 무관한 법 만능주의자들의 폭주일 뿐이었다.
윤석열 당선자가 내세운 ‘공정과 상식’이 큰 호응을 얻어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법 기술자들의 법 만능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국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은 법률 이전 문제다. 민주국가 시민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시민 의식의 출발점이다.
첫 내각 인사를 통해 많은 사람은 법 만능주의를 벗어나 ‘공정과 상식’의 세계가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논란으로 이런 바람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윤 당선자가 “부정의 팩트” 운운하며 정 후보자를 감싸는 순간 그런 바람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글이 나갈 때쯤 여전히 정 후보자가 청문회까지 가겠다고 버틸지 도중에 사퇴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실기(失機)한 지 오래다.
남는 교훈은 앞으로 하는 인사에서는 이런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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