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검수완박 논란이 드러낸 '누아르 국회'

bindol 2022. 4. 21. 06:11

검수완박 논란이 드러낸 '누아르 국회'

중앙일보

입력 2022.04.21 00:30

조강수 논설위원

사자성어 축에도 못 끼는 비루한 조어가 정권교체기 한국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 논란의 진원지는 조국 전 민정수석이다. 2017년으로 돌아가보자.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취임 직후 검찰이 불신받는 이유를 '직접수사에 따른 검찰권 남용'으로 지목하고 전국 43개 검찰청의 특수부를 선제적으로 없앴다. 검경수사권 조정 과정에선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갖고 선택적으로 사용해 폐해가 크다고 하니 수사권은 경찰에 다 주더라도 경찰 수사지휘·통제권은 달라"고 마지막 카드를 제시했다. 준사법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거였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경찰 수사지휘권 대신 "특수 수사에 한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인정한다"며 부패·선거 등 6대 범죄(권력형 비리) 수사권을 남겼다. 막상 적폐 수사 등에 써 보니 잘 드는 칼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하지만 2019년 9월 조국 사태 와중에 한달짜리 법무부 장관직에 앉자마자 "특수부를 축소하겠다"고 돌아섰다. 직접 당해보니 내편 네편 안 가리는 위험한 칼이라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이른바 '추·윤' 갈등이 검찰총장 징계 사태로 정점에 이르던 지난해 초 172석의 더불어민주당은 급기야 '검수완박'을 들고 나왔다. "감히 우리 말을 거역하느냐"는 불쾌감과 보복심리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하자 검수완박 주장은 자취를 감췄다. 그 1년 뒤 검경수사권 조정의 여파로 수사 현장이 뒤죽박죽 엉망진창된 판국에 다시 검수완박 입법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그사이 달라진 것이라면 대선에서 졌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대대적 사정 태풍이 예상된다는 것 외에 없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안의 의결을 강행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소속 민형배 의원이 탈당한 것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를 형해화시키려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꼼수"라고 반발하며 "박병석 국회의장이 상임위 정수에 맞춰 다른 당 의원을 강제로 사보임해달라"고 요청했다. [뉴스1]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문재인·이재명 구하기'가 설득력이 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권력층 '수사복지보장법'이라는 건 덤이다. 절대권력의 속성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도 있다.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 권력이 강할수록 뇌를 마비시키는 도파민 분비가 많아져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 된다."(이언 로버트슨, 『승자의 뇌』)


 박홍근 원내대표는 검수완박에 대해 "권력기관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권력 등 잠재적 거악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이전의 검찰 개혁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권 행사에 정치권력의 개입 정도가 민주국가를 가늠하는 명쾌한 척도 중 하나"(함승희, 『성역은 없다2』)였다. 그런데 정책적 준비나 대책 없이 '닥치고 검수완박'하자니 전국의 검사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한 여당 의원이 "이런 입법은 처음 본다"고 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국회 논의가 우습냐"고 타박한 건 꼴불견이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하라는 것 아닌가. 그곳이 민의의 전당 맞는지 의심스럽다. 법안 신속 처리를 위해 법사위의 민주당 소속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건 꼼수 중의 꼼수다. 법안도 급조한 탓에 허점에 자기모순 투성이다. 오죽하면 수사권을 넘겨받을 경찰도 업무 과중을 호소하며 검찰의 직접 보완 수사를 요구할까.


 검수완박이 실현되면 검사가 부검으로 사인을 밝혀낸 박종철 군 치사사건, 여야 정치자금의 실체를 드러낸 대선자금 사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의 단서를 찾아낸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 수사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건의 진실이 완전히 덮어지지는 않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취임하면 검찰총장과 상의해 직권으로 상설특검을 가동할 수 있다. 신설 중대범죄수사청에 현직 검사들을 파견하거나 전직 검사들을 대거 임용하는 방식으로 대대적 사정 수사 인력과 동력을 확보할 가능성도 크다. 멀쩡한 검찰권 쪼개기가 자칫 수사조직의 편법 양산이라는 부작용과 사법체계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이 책임론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게 눈에 보인다.


 국회가 검수완박의 대치를 통해 드러내는 미장센은 지난 5년간 현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 개혁이라는 제목의 누아르(범죄와 폭력을 다룬 장르)영화의 클라이맥스 같다. 지나치게 막무가내고 폭력적이다. 곧 '동물국회의 시간'도 펼쳐질 판이다.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7월 로스쿨법이 졸속 통과된 이후 우리 사회는 적잖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제도는 인간의 생활과 사고를 규율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강제 수사와 기소권을 규정하는 국가 사법체계를 몇 사람이 깃발을 꽂고 뚝딱 해치우게 되면 국민들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국회는 조직의 사활을 걸고 힘으로 맞부닥치는 누아르의 무대가 아니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려면 경찰 수사 통제권을 주고 해야 헌법정신에 부합한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