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44] 석상용 장군
지리산의 ‘허공달골’을 다녀왔다. 허공달골은 저녁 동쪽에서 달이 뜨면 새벽에 서쪽으로 달이 사라질 때까지 이 골짜기에서는 그 달을 전부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다. 허공달골의 해발 830m 위치의 언덕에는 석상용(石祥龍·1870~1920) 장군의 무덤이 있다. 1908년 남원 실상사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수비대와 총격전을 벌였던 의병대장이었다.
석상용 무덤의 돌비석에는 ‘飛虎將軍 勇力絶人(비호장군 용력절인)’이라고 새겨져 있다. 어찌나 몸이 날랬던지 마치 나는 호랑이 같았고, 힘도 장사라서 맨몸으로 붙으면 일본군을 집어 던질 정도였다고 한다. 석상용이 이끌던 의병들은 주로 함양군 마천면(馬川面)의 동네 사람들이었다. 깊은 산골 사람들이 석상용을 따라 화승총을 들고 의병활동을 하였다.
석상용 부대가 진을 쳤던 아지트는 지리산 촛대봉 바로 밑에 있는 ‘대궐터’ 였다. 해발 1300m의 아주 험준한 요새 지형이었다. 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일컬어지는 구형왕대에 구축했던 대궐이 여기에 있었다고 구전으로 전해진다. 가야국 임시정부의 피난성이 아니었나 싶다. 보통 ‘박회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밖에 있는 성’이라는 의미이다. 지리산 전체를 통틀어 가장 험준한 요새에 해당한다.
실상사에 주둔하다가 석상용 부대의 공격을 받았던 일본군은 치밀한 작전을 세워 반격한다. 현지 사람 마천면장을 앞장세우고 쳐들어와 이 대궐터 진지를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 얼마 전에 가보니 의병들이 사용했던 솥단지가 조각난 상태로 발견되었다. 석상용은 이 대궐터에서 탈출한다. 1908년부터 5년 동안 일본군의 추적대를 피해 지리산 동북 지역 일대를 숨어 다닌다. 지리산 노장대(老將臺), 미타봉, 진주 독바위 일대이다. 이 일대에는 자연 바위 동굴이 대략 50~60개가 넘는다. 은신하기에 좋은 지형이다. 이 지역 토박이들은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난리 났을 때 굴로 들어 가면 산다’는 말을 듣고 컸을 정도이다.
진주민란, 동학, 구한말 의병을 했던 사람들이 이 자연 동굴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석상용은 자연 동굴 덕택에 일본 추적대를 피해 무려 5년간이나 잡히지 않고 활동이 가능했다. 물론 고향이었던 마천 사람들이 몰래 식량을 날라다 주었을 것이다. 1912년 마침내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5년간 진주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다가 나와서 마천에 돌아와 3년 있다가 50세에 죽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인물이었다. 함양군 마천의 잊혀진 인물 석상용 장군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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