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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직 문화칼럼] 모스크바 크레믈린 이야기

bindol 2022. 4. 25. 10:53

“크렘믈린궁과 마린스키궁의 두 지도자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크레믈린’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중심에 있는 대통령궁을 상징한다. 크레믈린은 성채, 성곽, 요새를 의미하는데 붉은색 벽돌로 둘러쌓여 있으며 궁 동쪽 바깥에는 붉은광장이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어로 ‘크레믈(кремль)’, 영어로는 ‘크렘린(Kremlin)’, 한국어로는 ‘크레믈린’으로 발음한다. 속을 도무지 알 수 없고 비밀이 많아 보이는 사람을 소련시대 ‘철의 장막’에 빗대어 ‘크레믈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붉은 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의 ‘붉다’라는 의미는 원래 러시아어로 ‘아름답다(красивый, 끄라시븨)’라는 뜻이었는데 현대에 와서 ’붉다(кра́сный, 끄라시늬)‘라는 의미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즉, 성벽의 붉은 색을 상징하는 ’붉은 광장(Red Square)‘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모스크바 중심에 있는 ‘크레믈린 터’는 기원전 2세기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11세기 루스인들이 ‘보로비츠키’ 언덕에 목조건물을 지은 것이 크레믈린 성곽의 시초이다.




1156년에 키예프 공국의 ‘유리 돌 고루키’ 대공이 크게 확장하였으며, 1237년에 몽골군의 침략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 시대에 떡갈나무 목재였던 크렘린의 성벽이 백색 석회암벽으로 바뀌었다. ‘크레믈린’이라는 단어는 1331년에 처음 러시아 문서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1821년에는 프랑스 나플레옹이 모스크바를 침공하여 크레믈린에 입성했으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 후 크레믈린 서쪽 ‘보로비츠카야 탑’ 문을 통해 퇴각했다고 한다.


1917년 레닌의 볼쉐비키 혁명 후 ‘상트 페테르부르크’(1712년 모스크바에서 수도이전, 1924년 페트로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레닌 사망 후 레닌그라드로 변경, 1991년 본래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본래 도시명 회복)에서 1918년 3월 모스크바로 다시 수도를 옮긴 후 공산당 서기장과 러시아의 대통령이 집무하는 장소가 되었다.




크레믈린은 크게 궁 내부와 바깥의 붉은광장으로 구분된다. 원래 스탈린 시대에는 크레믈린 궁을 미개방하여 관람이 불가하였으나, 1956년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흐르쇼프’가 일반인들에게 개방을 허용했다. 철권통치의 독재국가에서 이미 60년전에 우리나라 청와대 같은 크레믈린을 개방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5월 10일 오전 10시에 청와대를 개방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크레믈린 궁은 비뚤어진 사각형 모양을 한 거대한 요새이다. 성벽은 전체 길이가 2,235m, 높이가 5~19m, 두께가 3.5~6m이며, 면적은 약 28만 3천㎡(약 8만 6천평)의 규모로 우리나라 경북궁(44만 7천㎡) 보다 작다. 성벽위에는 20개의 망루가 세워져 있는데, 가장 높은 탑은 80M의 ‘트로이츠카야(삼위일체) 탑’으로 관광객은 이 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크레믈린 궁의 정문인 높이 71M의‘스파스카야(구세주) 탑’에는 지름 6M가 넘는 대형시계가 모스크바 시간을 정확히 알려 준다. 스파스카야 탑으로의 자동차통행이 금지되자, 지금은 크레믈린 서쪽의 ‘보로비츠카야 탑’을 통해 자동차들이 주로 드나들고 있다.


궁 내부에는 러시아 황실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무기고 박물관, 차르(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리던 ‘성모승천(우스펜스키) 성당’, 황실가족의 예배당이며 황실이 결혼식이 거행됐던 ‘수태고지(블라가베셴스키) 성당’, 미카엘 대천사에게 바쳐진 ‘대천사(아르한겔스키) 성당’이 있다.






니콘 대주교의 사저였던 ‘열두 사도 성당’, 성모 마리아가 입었던 성의를 기념하는 ‘성의 성당’, 크렘린에서 제일 높은 ‘이반 대제의 종탑’, 차르 대포와 차르 종이 전시되어 있다. 대통령 관저는 ‘테렘 궁전’인데, 푸틴은 이곳을 사용하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20km떨어진 ‘노보오가료보’에 있는 별장을 숙소로 이용한다고 한다.


한·러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 11월 2일 7천석 규모를 자랑하는 크레믈린 궁전(대극장)에서 KBS에서 ‘열린음악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이 당시 모스크바 주재원으로 근무했는데, 고국의 문화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예술성과 음악성이 뛰어난 한국의 공연은 러시아인들로부터 큰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문화와 예술, 문학과 음악, 그리고 공연에 대한 사랑은 각별나다. 붉은광장 북쪽에 위치한 ‘볼쇼이극장’에는 비싼 공연료에도 불구하고 발레공연을 감상하는 관람객들로 항상 넘친다. 1990년대 경제난과 혼돈시기에도 러시아 국민들의 문화와 예술사랑은 각별났다. 러시아인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위대한 민족이다.




붉은광장에는 레닌묘가 있는데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관광객들에게 참배를 허용하고 있다. 레닌은 자신의 시신을 땅에 묻을 것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스탈린이 우상화하여 통치수단에 이용한 것이다.


원래 레닌묘에는 스탈린도 같이 나란히 누워 있었는데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흐루쇼프’가 성곽 아래 땅속에 묻었다고 한다. 레닌묘 뒤쪽으로 성벽아래에는 장관들, 소련의 모든 군원수, 유리 가가린, 막심 고리키를 비롯한 많은 이가 묻히는 영광을 누렸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안치된 지도자는 ‘콘스탄틴 체르넨코’다.


붉은광장 남쪽에는 형형색색의 돔으로 장식한 매우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이 있는데 황제가 다시는 이런 아름다운 성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건축가의 눈을 뽑아버렸다고 한다. 바실리 성당 남쪽으로는 약 500km의 아름다운 모스크바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광장 북쪽에는 군사박물관이 있으면 동쪽으로는 제정 러시아 시대인 1893년 완공된 ‘굼’ 백화점이 있다. 붉은광장에서는 매년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군사퍼레이드를 한다. 올해 5월 9일 전승기념일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전승행사를 펼칠 것이 예상된다.


크레믈린은 러시아의 심장이며 권력의 중심인 곳이다. 21세기 러시아의 황제(차르) 푸틴의 집무실이 있다. 푸틴은 2000년부터 집권하여 22년째 통치하고 있다. 2008년 헌법을 개정하여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렸으며, 2020년에 중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쳤다. 임기가 만료되는 2024년에 대선에서 승리하면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고 러시아 역사상 가장 오랜 통치를 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때 푸틴의 나이는 84세가 된다.




공교롭게도 푸틴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름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블라디미르’ 대공과 이름이 똑같다. 푸틴 대통령의 이름은 ‘블리디미르(이름) 블라디미로비치(부칭) 푸틴(성)’이다.


젤린스키 대통령의 이름은 블라디미르의 우쿠라이나어인 ‘볼로디미르’다. 블라디미르의 원어 의미는 ‘위대한 지배자’ 평화의 지도자“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름이 같은 크렘믈린 궁과 마린스키궁의 두 지도자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번 여름 백야의 계절에 크레믈린 궁을 가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