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68] ‘넘사벽’ 비어트리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찾기 어렵다. 아무리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도 무언가 하나쯤은 아쉬운 것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단테가 평생 짝사랑한 베아트리체는 감히 넘볼 수 없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24세에 요절했다.
영국에도 같은 이름의 비어트리스가 있었다. 그녀는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사교적이며 거기에 교양과 지식까지 넘쳤다. 그녀를 만나 본 총각들은 절망감에 빠졌다. 대화 도중에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우아함과 총명함 앞에서 ‘넘사벽’, 그러니까 감히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느꼈다.
그녀는 웬만한 남자들이 눈에 차지 않았다. 아니, 남자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훗날 총리가 된 조지프 체임벌린도 퇴짜를 맞았다. 그녀는 온통 사회 발전에만 관심이 있었다. 다만 급진 개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로마의 파비우스 장군처럼 지구전을 펼쳐야 개혁이 성공한다고 믿고, 그의 이름을 빌려 ‘페이비언 협회’를 세웠다.
오늘날 싱크탱크의 원조인 페이비언 협회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조사를 통해 영국 사회의 빈곤 문제와 하층민의 비참한 삶을 고발했다. 노동조합은 물론, 의무교육까지 반대하던 윈스턴 처칠도 그것을 읽은 뒤 생각을 바꿨다. 그것이 그녀의 업적이다. 페이비언 협회가 없었다면, 자본주의의 질곡이 계속 축적되다가 사회적 소요 사태로 분출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녀가 세운 협회 덕분에 영국에서 최저임금제와 실업보험, 건강보험을 일찍 도입했다.
결혼에 무관심하던 그녀가 34세에 갑자기 결혼을 발표했다. 그때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고, 친구와 총각들은 허망했다. 고르고 고른 신랑감이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금실은 굉장히 좋았다. 오는 30일은 85세의 그녀가 남편 곁에서 행복하게 눈을 감은 날이다. ‘강남 좌파’ 비어트리스는 부부 사랑에서도 ‘넘사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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