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70] 용산시대

bindol 2022. 5. 11. 04:01

[차현진의 돈과 세상] [70] 용산시대

입력 2022.05.11 00:00
 
 

궁궐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런 이유에서 정도전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개성의 수창궁을 계속 왕궁으로 쓰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태조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날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통해 태조가 신하들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왕과 신하의 줄다리기 속에서 건국한 지 2년이 지나서야 경복궁 신축이 확정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세워진 경복궁이 3년 만에 버림을 받았다. 1398년 왕자의 난으로 피바람이 분 뒤 정종이 개성의 수창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2년 뒤 그곳에서 왕자의 난이 또 터졌다. 개성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새로운 왕 태종은 수창궁에 머물기가 거북했다. 하지만 경복궁은 더 싫었다. 왕자의 난 때 자기가 저지른 살인의 추억 때문이다. 결국 창덕궁을 새로 지어 옮겼다.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 신축은 태종이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방식이다. 우리 헌법(제89조 17호)은 중요한 문제일수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무회의에서 충분히 논의하도록 한다. 2017년 사드 배치가 그랬고, 금년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마찬가지다. 태종이 아닌 태조의 방식을 거쳐 어제부터 청와대가 국민들의 볼거리로 변했다.

 

청와대는 원래 대통령 관저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자고 일어나 중앙청의 집무실로 출근했다. 그런데 6·25전쟁을 마치고 부산 피란지에서 돌아와 보니 중앙청 집무실이 불타버렸다. 이후 청와대가 대통령의 관저 겸 집무실이 되었고, 대통령이 출근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오늘 아침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하는 장면은 6·25전쟁 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연히도 새 집무실은 전쟁기념관 옆이다.

청와대가 있는 서울 종로구를 출발점으로 해서 1968년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1973년 총선 때 장기영 후보가 종로를 ‘정치 1번지’라고 불렀다. 이제부터는 용산이 정치 1번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