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69] 정치인의 변신
정책은 정치와 다르다지만, 모든 정책에는 정치색이 묻어있다. 통화정책은 예외다. 재정정책에 비해서 정치 중립적이라서 전문성이 강조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차기 정부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거꾸로 생각했다. 통화정책에서는 당파성을 감추지 않았다. 금리가 낮아야 자신이 재선된다고 믿고, 자신의 경제보좌관 아서 번즈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저금리를 요구했다.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패한 이유가 연준의 금리 인상 때문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재정정책에서는 그 반대로 탕평책을 썼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될 때 같은 차에 탔다가 함께 총탄을 맞았으며 존슨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였던, 민주당의 존 코널리를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를 의식한 것이지만, 코널리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거물 정치인답게 닉슨 행정부에서 금방 뿌리를 내렸다.
1971년 8월 13일 경제 관료들이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비밀리에 모였다. 2박 3일에 걸쳐 당시 최대 현안인 달러화 위기를 토론하다가 금태환 중단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좌장이었던 코널리에게 답안지를 받은 닉슨 대통령은 곧바로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8월 15일 일요일 저녁 9시였고, 도쿄는 월요일 아침 10시였다. TV 생방송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주도로 만든 브레턴우즈 체제의 해체를 선언했다. ‘닉슨 쇼크’다.
닉슨 쇼크의 배경인물 존 코널리는 골수 민주당원이다. 케네디 행정부의 해군장관과 텍사스 주지사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닉슨 탄핵설이 솔솔 퍼지던 1973년 이 무렵 갑자기 당을 옮겼다. 양당을 두루 거친 초당적 인물의 이미지가 탄핵 이후 대통령직 도전에 유리하다는 계산 결과였다. 그리고 1980년 공화당 예선에서 레이건과 맞붙었다. 정치인의 변신은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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