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조용헌 살롱] [1345] 지네 주술

bindol 2022. 5. 2. 04:22

[조용헌 살롱] [1345] 지네 주술

입력 2022.05.02 00:00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한 지인이 책을 하나 써서 보내왔다. ‘충선생’(저자 곽정식)이라는 제목이었고, 곤충과 벌레에 관한 책이었다. ‘지네’ 항목을 펴 보니까 주술(呪術)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남쪽의 운남성 산속에 사는 묘족은 지네, 전갈, 독거미를 같은 접시에 넣고 뚜껑을 닫아 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며칠 후에 뚜껑을 열어보면 대개 지네만 살아남아 있다. 지네가 전갈, 독거미를 물어 죽인 것이다. 최후 승자인 지네를 ‘고충(蠱蟲)’이라고 불렀다. 묘족 주술사들은 최후 승자 고충이 주력(呪力)을 품고 있다고 믿었다. 고충을 이용해서 주술을 걸면 상대방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다. 고혹(蠱惑)은 여기에서 탄생한 단어라는 설명이다.

주술의 목표는 무엇인가? 주술사가 가장 많이 받는 민원 사항은 짝사랑하는 이성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을 좋아하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부탁을 주술사가 지네에게 전달한다는 시스템이다. 어떻게 전달? 평소에 주술사는 지네를 팔뚝에다 올려놓고 자기 피를 먹게 한다. 주술사의 피를 먹은 지네는 주술사와 피를 나눈 관계이므로 염력(念力)이 통하게 되는 것이다. ‘저 여자(남자)의 마음을 돌려 놓거라’ 하고 지네에게 주문하면 지네가 그 상대방 마음을 돌린다는 전제다.

 

고혹(蠱惑)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이나 매력 같은 것에 이끌려서 정신을 못 차림’이다. 저자는 이런 묘족의 오래된 풍습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중국 운남성에 가면 곤충 연구소가 있는데, 이게 국책 기관으로서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다. 여기 가서 안내를 받아 묘족 노인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1958년에 대약진 운동의 하나로 참새를 잡아 죽이는 운동을 벌였다. 곡식을 먹는다는 이유였다. 전국적으로 참새를 수억 마리 죽이고 나니까 메뚜기 떼가 창궐하였다. 천적이 사라지니까 메뚜기 떼가 논밭을 덮쳐서 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3년 기근으로 무려 4000만명이 굶어 죽는 대가를 치렀다. 부랴부랴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에게 사정하여 참새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생긴 연구 기관이 운남성의 ‘곤충 연구소’라고 한다. 곤충을 연구하는 것이 생태계를 유지하고 인민들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다고 깨달은 셈이다. 코로나를 잡는다고 2500만 인구의 상하이를 봉쇄하는 중국 공산당 정책을 보면서 참새 생각이 났다. 인위(人爲)로써 자연(自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도 부작용이 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