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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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가족에 대한 기억은 오감으로 구성된다.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유되었을 일상의 냄새, 미각, 소리 그리고 감촉과 색상은 유대감으로 채색된다. 가족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내는 삶 속에서 때론 모진 삭풍을 헤집는 연약한 손바닥의 온기를 서로가 붙잡을 때마다,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 형언하기 힘든 애정은 실핏줄처럼 형성된다. 대나무가 마디를 짓듯 인생의 고비마다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게 새겨진다.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사이사이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거친 비바람에 견딜 수 있는 것도 중간중간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마디가 없다면 미끈해 보일지 몰라도, 마디가 있기에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게 아버지는 대나무의 마디 같았고 오감의 결정체 같던 존재였다. 온전한 진실에 너무 무감했다.
함께할 시간이 더 남았다고 막연하게 기대했던 아버지를 홀연히 떠나보내며 유품을 정리하니 빛바랜 사진들이 서럽게 추슬러진다. 가물거리는 기억이 사진 속 얼굴을 통해 또렷이 상기되는 것조차 아버지와의 이별 앞에 북받쳐 오르는 슬픔으로 치환된다. 누구나 가족의 죽음을 통해 이별과 상실을 배운다는 건 고통스럽고 처연한 일이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일이지만 가능한 한 늦게 천천히 겪을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의 한계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가족과의 이별 앞에 속절없고 무기력하다. 생명을 어루만지는 의사로서 가족의 죽음을 차마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배가된다.
대나무 마디 같았던 그의 자취
이제야 깨닫는 내리사랑의 뜻
노령 환자에 대한 치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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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오디세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가족사진으로 그제서야 떠오른 기억은 평온한 삶에 제동을 건다. 삶은 어쩔 도리 없는 관습의 반복이라지만 사진 속 평온했던 소소한 일상조차 제대로 반복하지 못한 우를 범하였다는 자책감이 격하게 역류한다. 홀로서기에 안착했다고 자만했던 아들이 아버지의 떠남 이후 시답잖은 헌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생의 ‘산티아고’를 걷고 있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건조했다. 어쩌면 여름 산 지천에 널린 패랭이꽃의 위로만으로 도리를 다하였다고 자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 무심했다.
가족사진 속에서 여전히 젊음이 박제된 채 불멸의 푸름으로 아버지는 남아 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 고향 마을 인근의 저수지 풍경은 아스라한 유년의 이데아로 배어있다. 아버지의 여우비 같았던 청춘의 존재가 소환되는 사진 속 그곳은 백설기 구름 같던 백서향이 융단처럼 깔렸다. 온종일 걸어도 인기척조차 없는 고즈넉한 숲길 배경 속, 사람 좋은 웃음으로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른 아침에 뜨는 이사빛의 영롱함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면도를 하던 거울 속 내 모습이 무척이나 닮아 있다. 영락없는 아버지의 자식이다. 왈칵 눈물이 치솟는다.
시인 정호승의 ‘아버지들’ 속 아버지는 ‘석 달 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 셋방’이고 ‘아침 출근길 보도 위 누가 버린 낡은 신발 한 짝’이며, ‘벽에 걸려 있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고장 난 벽시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자식만큼은 ‘햇볕 잘 드는 전셋집’에서 ‘새 구두’ 와 ‘인생의 시계가 고장 나지 않는’ 평탄한 삶을 살기 원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나이가 차 들어 아버지를 이해하고 나니 이제는 가족사진 몇장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당신의 부재가 너무 아파져 새벽을 기웃거린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 모질게 계속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부질없는 연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아들의 통렬한 오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제야 알겠다. 가족사진 속 저수지에서 아버지와 누린 유년의 행복은 ‘가장의 무게에 대한 공감의 부재’에 기초했다. 자식의 그 이기적 행복을 이제 아버지에게 돌려 드릴 기회가 없다.
의료기기 빼곡한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의 밤새 안녕함에 감사했던 순간들. 사랑한다고 또렷이 말하며 아버지를 꼭 안아주었던 그때 그 시간이 차라리 그립다. 죽음은 모든 삶의 순간과 가치를 재정렬한다. 아버지의 삶과 죽음이 전해준 고귀한 가르침은 의사로서의 남은 삶에 가장 큰 지표로 남을 것이다. 빛바랜 가족사진 속 아버지의 내리사랑 온기가 오감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연로하신 환자들에 대한 치사랑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