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한국은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연구개발(R&D)에 엄청나게 투자한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가 세계 1, 2위를 다툰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이스라엘은 R&D 투자가 창업과 일자리로 돌아오는 반면, 한국은 대부분 논문으로 끝이다. 이스라엘을 이렇게 바꾼 건 1990년대 초반에 설립된 ‘요즈마펀드’다. 대학과 연구소 기술 창업에 집중 투자한다. 여기서 세칭 ‘대박 신화’가 나오고, 해외에서까지 투자 자금이 들어오면서 이스라엘의 실험실 창업은 갈수록 번성하고 있다. 요즈마그룹의 이원재(35·사진) 한국법인장은 “처음 펀드를 만들며 이스라엘 정부가 투자한 1억 달러가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두 가지를 해야 한다”고 권했다.
① 정부가 실패를 허(許)하라=90년대 초반 이스라엘 경제는 최악이었다. 걸프전의 여파로 실업률이 치솟았다. 돌파구로 모색한 게 R&D 벤처다. 일종의 창업 센터인 ‘요즈마 캠퍼스’를 전국에 세우고 대학을 중심으로 기술 벤처를 육성했다. 동시에 정부는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1억 달러(약 1100억원)를 내놓고 민간 펀드를 유치했다. “실패하면 손실은 정부가 전부 떠안겠다”고 했다. 민간 투자자금 1억6500만 달러가 들어왔다. 성공하는 벤처들이 나왔다. 해외 투자금이 들어오면서 이스라엘 벤처의 몸값이 뛰었고, 창업은 더 활성화됐다.
② 글로벌 세컨더리 펀드를 유치하라=이스라엘은 벤처 투자를 하고 4년이 안 돼 투자금을 회수한다.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창업 후 10년 넘게 걸려 상장까지 하는 게 보통인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벤처 몸값을 잘 쳐주지 않아 M&A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상장이 거의 필수다.
긴 투자회수기간은 투자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해결책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가진 세컨더리 펀드(Secondary Fund)를 유치하는 것이다. 벤처 캐피탈이 가진 주식을 상장하기 전에 사는 펀드다. 이들이 주식을 사는 모습은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가치 있는 벤처, M&A 대상이 될만한 벤처가 한국에 있다”는 신호로 작용한다. 정부가 대형 세컨더리 펀드를 들여오면, M&A 눈길도 한국을 향할 것이다.
권혁주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실패 용납한 1억 달러가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