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구나

[조상열 문화칼럼] 이화에 월백하고

bindol 2022. 5. 3. 16:44

성주 이씨 이조년 이야기

 

하얀 순백의 배꽃, 붉은 복사꽃으로 물든 온 천지가 봄날의 향연이다. 흰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 두둥실 달마저 떠오르는 밤이면 상춘(賞春) 연인들의 춘심(春心)은 마냥 바람이 난다.

 

묵객(墨客)들은 “이화에 월백”이라는 십오야 시회(詩會)를 여니, ‘춘야연도리원(春夜宴桃李園)’의 장관이 펼쳐진다.

 

이때는 이두(이백과 두보)가 따로 없는 모든가 시인이 된다. “아이야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어디인가 난 예간 하노라.”
  

자연스레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多情歌)가 떠오른다. 고려시대 시조를 대표하여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시조가 아니던가.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가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다정가는 단순한 서정적인 연인들의 노래는 결코 아니다. 작가 이조년이 충렬왕 때 모함으로 유배를 살다 풀려난 직후 13년간 초야에 은거할 때 왕을 그리며 지은 노래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이성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시조로 애송되고 있지만, 사실은 임금을 향한 애끓는 충정과 연군(戀君)의 마음을 애써 억제하며 읊은 절절한 작품이다.  

 

 때는 삼경(三更)은 한 밤중. 수심으로 잠 못 이루는 깊은 밤이다. 두견새마저 피를 토하듯 울어 대니 가슴이 미어진다. 자규(子規)는 두견(杜鵑)새, 접동새,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춘추시대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죽어서 두견새로 변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망제의 정혼(精魂)은 두견새가 되어 고국의 멸망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 했고, 매년 배꽃, 복숭아꽃, 진달래가 피는 춘삼월에 봄바람이 불고 둥근달이 떠있는 밤에 망국의 설움을 달래며 구슬피 운다고 한다.

 

작자 이조년(李兆年)의 가문을 보면 흥미롭다. 이조년은 고려후기 몽골 침략이후인 충렬왕, 충혜왕 때의 문신으로 대제학을 지낸 충직한 인물이다.  

 

 본관은 경상도 성주를 관향으로 삼는 성주 이씨, 시조는 이순유로 경주이씨 시조 알평공의 32대손이다. 이순유는 신라가 고려에 망하자 벼슬하지 않고 경상도 성주 경산으로 들어가 살았다. 중시조는 12세손 이장경으로 이조년의 부친이다.

 

이장경은 아들만 다섯을 두었는데, 모두 이름을 특이하게 지었다. 첫째가 이백년, 둘째가 이천년, 셋째가 이만년, 넷째가 이억년, 다섯째인 막내가  이조년으로 장수하기를 기원해서 지었다고 한다. 다섯 형제가 모두 벼슬을 했는데, 막내 이조년이 가장 현달하여 유명하다.

  

 이천년의 아들인 이승경이 원(元)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하면서 공을 세우자 원나라 황제가 그의 조부인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으로 추봉하였다. 이로 인해 농서이씨라고 하였다가, 충렬왕 이후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주이씨라고 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 성주이씨 인물들은 적지 않다. 

 

명나라 때 요동왕이라 불리는 이성량 장군은 이천년의 7대 후손이고, 이성량의 아들이 임란 때 명나라 대군을 인솔 조선에 온 이여송(李如松) 장군이다. 또 고려 말의 권신 이인임과 이인복은 이조년의 손자들이다.

 

여말선초에 영의정에 오른 형재 이직(亨齋 李稷), 조선후기 성리학의 거성 일재 이항(一齋 李恒) 등이 성주이씨 이다. 현대 인물로는 전 전두환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국회의원을 지낸 이대순, 한학자 송담 이백순 선생 등이 있다. 필자는 이백순 선생에게 한학을 공부했다. 

 

고려 말의 신하로서 조선 개국 공신에 오른 이직은 두 왕조를 섬긴 사람이다. 때문에 충신불사이군의 두문동파 사대부들은 이직을 참 선비로 여기지를 않고 백안시(白眼視)하며 비난했다. 이직의 대표적 시조가 다음의 오로시(烏鷺詩)라 불리는 유명한 시조이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 너 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이직이 속마음과 달리 백로인척 하는 당시 사대부들에게 자신을 까마귀에 빗대어 넌지시 항변하는 뜻을 담아 읊은 시조로 보인다. 

 

 이조년 이억년 형제간의 우애가 담긴 일화도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하다. 

 

한 번은 형제가 길을 가다가 조년이 황금 두 덩어리를 주웠다. 이게 웬 횡재냐며, 조년은 금덩어리 하나를 형 억년에게 주어 나눠가졌다. 얼마 후 공암 나루(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게 되었다. 이 때 조년이 황금덩어리를 꺼내 강물에 던져 버리자, 놀란 형이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 왜 그렇게 귀한 금덩어리를 물에 던져 버리는가?”

  "형님! 내가 평소 형을 매우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금덩어리를 나눠 갖고 보니, 문득 형이 없었더라면, 금덩어리 모두가 내 차지인데 하고 형을 꺼리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로 보면 이 금덩어리는 형제간의 우애를 헤치는 물건이니, 차라리 강에 던져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네 말이 참으로 옳구나. 나도 동생과 뜻을 함께 하겠다.” 

 

마침내 형제는 금덩어리를 모두 강물에 던져 버렸다. 이조년의 고결한 인물됨을 말해 주는 이야기다.   

 

행주산성 행주나루 건너편에 있는 이억년 이조년 형제의 투금탄(投金灘) 전설의 비가 세워져 있다. 

 

봄인가 싶더니 한 낮은 벌써 여름이다. 속절없이 지는 꽃잎이 아쉽기만 하다.

면앙 송순의 시조가 생각난다. 


“꽃이 진다하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새의 탓이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엇 하리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여름 가을이 지나서 겨울이 다시 온다. 삼라만상 자연의 순환법칙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권력도 부귀도 결코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봄날 최고의 양생(養生)이요, 행복 이 아닐까 싶다.         

 

다시보기: 유트브<조상열의 입문학수다> https://youtu.be/ELMcZ4t1W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