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허재 감독과 정호영 후보자
오해 사기 싫어 아들 선발 배제
자녀 편입 의혹 받는 장관 후보
애초에 다른 의대 권유했어야
고위 공직자는 그런 자세 필요
한국 농구계 전설인 허재는 과거 프로농구 감독 시절 신인 선수 선발 과정에서 아들과 마주쳤다. 첫째 아들이 프로가 되겠다고 신청한 것. 운동을 업(業)으로 삼는 선수라면 프로 입단은 최종 목표이자 꿈이다. 그 꿈을 잡는 선수는 소수다. 허 감독 아들은 실력이 괜찮았다. 상위권에 뽑힐 거란 분석이 많았다. 허 감독은 4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3순위까지 호명(呼名)됐는데 아들 이름이 없었다. 이제 4순위, 허 감독이 뽑을 차례였다. 그가 아들을 뽑는다고 비난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실력만 놓고 보면 충분하다는 평가였기 때문. 하지만 허 감독은 무거운 표정으로 나와 다른 선수 이름을 불렀다.
나중에 허 감독이 방송에서 하는 얘길 들어보니 아들은 서운해서 “농구를 그만두겠다”고까지 했고, 아내는 “아들이라고 역차별하는 거냐”라며 이혼까지 들먹이는 바람에 아주 애를 먹었다 한다. 아들은 바로 다음 5순위로 지명을 받았고, 지금은 프로농구 특급 선수로 성장했다. 허 감독은 “아들이 (우리) 팀에 들어오는 순간, 팀 전체 분위기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인 선수지만 감독 아들인데 어떻게 팀원들이 신경 안 쓰고 보통 선수처럼 대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두 자녀가 아버지가 다니는 의대에 편입하는 과정을 두고 벌어진 논란이 끝나지 않는다. 정 후보자는 “(편입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다”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만, 애초에 아버지가 병원장으로 있는 의대에 편입하겠다는 생각을 막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병원장 자녀가 다니면 다른 교수나 직원, 학생들 모두 불편하고 심적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선발 기준과 학점 등 각종 평가를 아무리 공정하게 한다 해도 오해가 생기고 신뢰가 훼손되기 마련이다. 학교나 병원이나 마이너스다. 아직 불법이 드러나지 않았고 ‘아버지 다니는 학교라고 못 가란 법 있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장관 후보라면 그 정도 엄격한 윤리의식을 요구받는 법이다. 보건복지부는 1년 예산이 96조원으로 정부 부처 중 가장 많다. 포스트 코로나 대책에 연금 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도 다뤄야 한다. 그런 막중한 과제를 지휘해야 할 수장(首長)에게 높은 도덕성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건 지나친 게 아니다.
의대 입시 과정을 잘 아는 한 교수는 이런 사연을 전했다. 한 사립대 부총장 아들이 카이스트(KAIST)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국립대에서 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전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주위에서 기왕이면 아버지가 부총장으로 있는 그 사립대 의대가 어떠냐고 권유했다. 아버지는 물론, 아들도 펄쩍 뛰었다. 괜한 오해를 불러 피해를 끼치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 아들은 다른 대학 의대에 지원했고 대기자 명단에까진 올랐지만 낙방했다. 그 뒤 진로를 생명공학으로 돌려 지금은 괄목할 만한 연구자가 됐다 한다. 정 후보자가 이랬다면 자녀 얘기는 미담으로 회자됐을 것이다.
의문은 가시지 않았지만 새 정부는 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정 후보자 역시 경북대 보직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장관 취임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논란 끝에 사퇴했다. 잡다한 의혹이 많았지만 핵심은 아버지가 깊이 관여한 기관에서 가족들이 혜택을 받았느냐는 내용이었다. 정 후보자와 비슷하다. 그런데 결말은 다르다. “정 후보자는 당선인 40년 지기(知己)이고 김 후보자는 아니라서”라는 말이 나온다. 설마 그렇겠나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것 말고는 차이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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