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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칼럼] 文이 체통과 맞바꾼 갑옷, 그래서 좀 안심되시나

bindol 2022. 5. 5. 03:57

[김창균 칼럼] 文이 체통과 맞바꾼 갑옷, 그래서 좀 안심되시나

집권당이 “대통령 지킨다”
졸속 통과시킨 검수완박
국무회의 때 국회 열지 말라
자기 말 뒤집으며 法 공포
대통령 말 발단 된 범죄 혐의
아랫사람들이 대신 곤욕

입력 2022.05.05 00:00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2년 차였던 2018년 8월, 청와대 대변인은 “매주 국무회의가 열리는 화요일엔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가 안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 부처 장관들이 국회에 불려 나가 국무회의가 몇 차례 파행을 겪은 뒤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요청을 정무수석을 통해 국회에 전달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제, 5월 3일은 문재인 정부 임기 중 마지막 화요일이었다. 정례 국무회의가 마지막으로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소집했다. “국무회의 날 국회를 열지 말아 달라”는 대통령 요청을 묵살한 것이다. 국회의 결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무회의 시간을 오전에서 오후로 미뤄 달라고 한술 더 떴다. 문 대통령의 고집과 심통을 자극할 수 있는 도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한마디 불평 없이 국회 뜻을 따랐다. 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검수완박 법안을 공포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 수사에서 검사들이 손을 떼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민 절대 다수가 검수완박법 처리에 반대했다. 대통령과 정권 사람들이 검찰 수사를 피하려는 ‘셀프 방탄’으로 봤기 때문이다. 정권 비판 세력이 꾸며낸 프레임이 아니다. 당초 정권은 검수완박법과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을 동시에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검수완박법은 윤 총장이 사퇴하자 실종됐다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자 부활했다. 윤석열 영향권 검찰을 겨냥했다는 뜻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정권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법안 공포까지 마치려고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법 통과가 안 되면 “문재인 정권 사람 스무 명이 감옥에 갈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혐의는 드러난 것만도 세 가지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은 “가동 중단은 언제 되느냐”는 대통령 채근에서 비롯됐다. 앞서 구속됐던 산자부 국장과 서기관을 포함, 당시 장관, 청와대 비서관, 한수원 사장 등이 기소된 상태다. 울산 선거 공작 역시 “30년 지기가 당선되는 걸 보고 싶다”는 대통령 소원이 발단이었다. 그 꿈을 이뤄 드리려 청와대 조직 8곳이 뛰어들었고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15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회삿돈 수백억원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상직 의원 사건은 대통령 딸 가족의 수상한 행적과 얽혀 있다. 대통령은 이 사건들에 대해 남의 일인 양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다. 대신 깃털 수십 명이 수사받고 법정 가고 감옥에 들락거린다.

 

영화 ‘친구’는 부산 조폭 이야기다. 살인 교사 혐의로 복역 중인 조폭 두목 준석을 친구 상택이 면회 오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상택은 “니 법정에서 와 그랬노”라고 묻는다. 조폭 부하가 두 사람의 친구 동수를 살해한 범죄를 왜 준석 자신이 지시했다고 시인했냐는 질문이었다. 준석은 “쪽팔리잖아”라고 답한다. “건달은 쪽팔리면 안 된다”면서 그래서 부하에게 책임을 미룰 수 없었다고 한다. 준석은 쪽팔리지 않는 대가로 중형 선고를 받아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평가는 진영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다만 국가 최고 지도자를 지낸 사람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쪽에서도 인정하는 대목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측근들을 사법 처리 위기에서 구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나면서 참모 수십 명을 겨냥했던 검찰 수사가 중단됐다. 노 전 대통령 유서 속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대목은 이런 사정을 담고 있다. 낯이 안 서는 일로 구질구질해진 처지를 못 견디는 부산 사나이의 기질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집권당 의원들이 ‘대통령 보호용’이라고 떠들썩하게 광고하며 밀어붙이는 법안에 서명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새 정권 임기가 시작된 이후에 발효될 법을, 새 대통령이 반대하는데도 공포하는 것은 명분도 서지 않는다. 더구나 그 법을 공포하기 위해 5년 내내 아침에 열었던 국무회의를 오후로 미뤄야 했다.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쪽팔리고’ ‘구질구질해서’ ‘내 체통과 염치는 뭐가 되냐’며 못 하겠다고 뿌리쳤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를 엿새 남기고 문재인 방탄법에 서명, 공포하는 선택을 했다. “책임 있게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라고 궁색한 변명까지 남겼다. 헌정사에 지워지지 않을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대가로 얻은 갑옷은 과연 문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