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방탄법, 그 예쁜 저주토끼
입력 2022.05.05 00:30
안혜리 논설위원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뿐 아니라 거의 전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무줄 회의'라는 사상 초유의 꼼수까지 동원해가며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끝내 본인과 그 무리를 지키는 불순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의결·공포했다. 관련 뉴스를 전해 듣자마자 이상하게 위의 이 문장이 떠올랐다. 이달 말 발표하는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저주토끼』(2017)의 표제작 '저주토끼'의 첫 문장인데, 저주의 섬뜩한 작동 원리를 담은 말 같아 책을 읽는 내내 묘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가까이 두기 무서울 만큼 흉측해선 안 되고 늘 옆에 끼고 싶을만큼 예쁜 물건이어야 한다. 그래야 저주가 통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그래서 더 무섭다. 예뻐 보이는 게 눈에 보이는 것처럼 진짜 예쁜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새 나를 파멸로 이끄는 저주의 도구일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그런 맥락에서 노골적인 '문재인 정부 방탄법'인 검수완박이야말로 딱 그런 저주 걸린 법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문 대통령과 그 무리 눈에 너무나 예뻐 보여서 홀리듯 삽시간에 온갖 불법과 꼼수를 불사하며 기어이 통과시켰지만 훗날 후회할 날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마지막 국무회의를 열었다. 통상 오전 10시에 시작하지만 검수완박 통과를 위해 두 차례나 시간을 바꾼 끝에 오후 2시에 했고, 뜻대로 관련 법은 의결 공포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니, 이미 그런 조짐을 감지할 수 있다. 40%를 넘나드는 퇴임 시점의 지지율만 놓고 보면 우리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고, 감옥으로 귀결된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퇴임 후 이 정권의 불법·비리 수사 자체를 막아 본인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든든한 검수완박까지 마무리된 마당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 시간을 늦추는 꼼수로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담하게 가담함으로써 검수완박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검수완박의 적극적인 기획자(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라는 세간의 의혹을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헌법 위반 소지와 절차적 하자는 차치하고, 법 밖에는 달리 기댈 데 없는 아동이나 장애인 등 약자와 힘없는 서민만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이재명·문재인을 지키는 법'(민주당 안민석 의원 페이스북)을 기어이 자기 손으로 사인했으니 하는 말이다. 나라 근간을 지켜온 사법 시스템이 무너지든 말든, 국민 눈에서 피눈물이 나든 말든, 오로지 나와 내 무리의 안위만 챙기려 무리수를 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의 모습을 모두 똑똑히 목격했다. 지난 5년 동안 개혁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하며 감춰온 불순한 의도는 그렇게 간파당했다.
분노하는 국민은 아랑곳없이 지금 당장은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불법과 비리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정권 사람들 모두 쾌재를 부를지 모른다. 대통령 친구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가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울산시장 사건, 탈원전이라는 이념적 도그마에 빠진 대통령의 한마디에 벌어진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정권 실세 이름이 줄줄이 나왔는데도 흐지부지된 라임·옵티머스 사건, 여기에다 어느새 묻혀버린 대장동 사건까지. 문재인 청와대와 민주당이 협업해 일궈낸 검수완박 승리로 굵직한 정권 비리 전부가 검찰 수사의 칼날을 피하게 됐다고 안도할지 모른다.
과연 뜻대로 될까. 과거 행태로 보자면 늘 검찰보다 권력 앞에 재빠르게 드러누웠던 경찰이 이번만큼은 검수완박의 입안자 의도대로만 움직일 거라 믿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 같다. 경찰이 목을 죄오면 그땐 또 거대 의석을 무기 삼아 경수완박(경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외칠 텐가. 그래 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지금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너무나 뻔뻔한 모습에 허를 찔려 잠시 넋이 빠져있지만, 죄짓고도 벌을 안 받겠다는 권력자들을 단죄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낼 거다.
다시 돌아와(※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 '저주토끼'에서 내 이익 좇느라 멀쩡한 남의 집안 풍비박산 낸 사장은 처음엔 아무 벌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저주가 깃든 물건인지 모르고 토끼 전등을 쓰다듬으며 좋아했던 철모르는 사장의 손주였다. 그다음은 죽은 자기 아들(손주)이 그랬던 것처럼 이 토끼 전등에 집착하다 건드리기만 하면 뼈가 부러지는 고통 끝에 죽은 사장의 아들이었다. 직접적인 저주에 걸리지 않았던 사장 역시 끝내 저주를 피하지는 못했다.
오는 9월 법 시행으로 숱한 피해자를 양산한 후에 결국 이런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누가 철없이 저주 물건에 손을 댄 손주인지, 그 저주를 물려받고 죽은 아들인지,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간 사장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모두 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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