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口) 귀담아듣는(耳) 사람이 뛰어난 지도자
지존이라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겸허함이 필수
지존이라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겸허함이 필수
1. 성인의 태도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들보다 낮은 데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이 돼 백성의 윗자리에 앉으려면 자신을 낮춘 채 말해야 하며, 몸을 백성 뒤에 둔 채 나서야 한다.
[노자] 제66장 ‘강해(江海)’장에 나오는 성인의 태도에 대한 역설(逆說)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잊는(虛心亡己) 덕으로 임해야만 아래로 물 흐르듯 천하가 귀의하게 된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만 진정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고대 제왕들은 자신을 불곡(不穀)이나 과인(寡人)이나 짐(朕)이라 부르며 몸을 낮췄다. 불곡은 제대로 여물지 않은 곡식이고, 과인은 짝을 잃은 듯 모자라는 사람이며, 짐은 구멍이 나 침몰하려는 배를 먼저 수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두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구성원을 위해 제일 먼저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렇듯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면 모든 사람이 자연스레 뒤따르게 된다. 남과 다투지도 않기 때문에 백성 위에 존재한다 해도 무겁다 느끼지 않고, 앞에 나선다 해도 해롭다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거이 추대하고, 이 세상 누구도 겨룰 자가 없어 진정한 ‘지존’이자 성인이 되는 것이다.
2. 성(聖)의 어원
[노자] 제66장 ‘강해(江海)’장에 나오는 성인의 태도에 대한 역설(逆說)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잊는(虛心亡己) 덕으로 임해야만 아래로 물 흐르듯 천하가 귀의하게 된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만 진정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고대 제왕들은 자신을 불곡(不穀)이나 과인(寡人)이나 짐(朕)이라 부르며 몸을 낮췄다. 불곡은 제대로 여물지 않은 곡식이고, 과인은 짝을 잃은 듯 모자라는 사람이며, 짐은 구멍이 나 침몰하려는 배를 먼저 수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두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구성원을 위해 제일 먼저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렇듯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면 모든 사람이 자연스레 뒤따르게 된다. 남과 다투지도 않기 때문에 백성 위에 존재한다 해도 무겁다 느끼지 않고, 앞에 나선다 해도 해롭다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거이 추대하고, 이 세상 누구도 겨룰 자가 없어 진정한 ‘지존’이자 성인이 되는 것이다.
2. 성(聖)의 어원
성(聖)은 성인(聖人)을 비롯해 성군(聖君)·성왕(聖王)·성현(聖賢)·성탄(聖誕)·성경(聖經)·성당(聖堂)·성소(聖所)·성배(聖杯) 등 여러 단어를 구성하는 중요한 글자다. 듣기만 해도 거룩함과 신성함이 느껴지는 말들이다. 그러나 ‘성스러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다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어에서는 ‘성인’ ‘성스러움’ ‘성물’ 등을 ‘saint’로 표현한다.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2세기쯤의 고대 프랑스어 ‘seinte’에서 왔고, 이는 라틴어인 ‘sanctus’에서 근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성결(聖潔)’ 즉 거룩하고 깨끗하다는 뜻을 담아 세속에 물들지 않음이나 그것을 초월한 깨끗함에서 그 어원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상대를 모함하며, 서로 착취하는 썩어빠진 모순으로 가득한 곳이 이 세상이다. 이 모든 세속성을 초월할 수 있는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가 바로 ‘성인’이었고, 그것이 ‘성스러움’이었다.
동양에서도 이랬을까? 달랐다면 어떤 개념에서 출발했을까? 그 근원을 찾아가는 방법은 여전히 한자의 어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성인을 뜻하는 성(聖)자가 갑골문시대부터 출현했고, 지금까지 별다른 자형(字形) 변화 없이 그대로 쓰여 근원과 변화를 추적할 수 있음은 퍽 다행스럽다.
성(聖)은 갑골문에서도 지금처럼 耳(귀 이)와 口(입 구)가 의미부이고 (좋을 정)이 소리부인 구조다. 여기에 든 정( )은 발돋움을 한 사람을 그렸는데, 비슷한 모양의 임( )과 섞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임( )은 정( )과 달리 가운데 획이 긴데, 날실(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이 장착된 베틀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보통 사람 뛰어넘는 총명한 존재 일컬어
그래서 성(聖)은 발돋움을 해( ) 남의 말(口)을 귀담아듣는(耳) 사람이라는 의미를 그렸다. 뛰어난 지도자를 뜻했던 고대의 ‘성인’에게서도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최고 덕목의 하나인 ‘경청’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민중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 충직한 비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그리하여 독단으로 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최고 덕목임을 강조한 것이다.
성(聖)의 초기 형태에는 구(口)가 빠진 자형도 보이는데, ‘성인’의 근원이 사실은 ‘귀’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뛰어난 청각을 가진 사람’을 상징하는 큰 귀(耳)는 원시 수렵시절, 야수나 적의 침입을 조기에 발견해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상징한다. 이는 갑골문시대 훨씬 이전의 원시 수렵시대의 생존환경과 그 흔적이 축적돼 남겨진 것이다.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무기와 생산 도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계급과 국가가 출현했다. 그러자 성(聖)도 수렵시대의 족장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변신하는데, 아마 이때 더해진 것이 구(口)일 것이다. 구(口)는 입을 그렸고, 입은 말을 상징한다. 남의 말을 귀담아들어 그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민심을 헤아리는 존재가 바로 ‘지도자’임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로부터 성(聖)은 보통 사람을 넘는 총명함과 지혜를 가진 존재나 성인을 말하게 됐고, 학문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도 지칭하게 됐다 특히 유가에서는 공자를, 불교에서는 부처를, 도가에서는 도통한 자를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3. ‘제왕’을 지칭하는 말들
영어에서는 ‘성인’ ‘성스러움’ ‘성물’ 등을 ‘saint’로 표현한다.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2세기쯤의 고대 프랑스어 ‘seinte’에서 왔고, 이는 라틴어인 ‘sanctus’에서 근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성결(聖潔)’ 즉 거룩하고 깨끗하다는 뜻을 담아 세속에 물들지 않음이나 그것을 초월한 깨끗함에서 그 어원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상대를 모함하며, 서로 착취하는 썩어빠진 모순으로 가득한 곳이 이 세상이다. 이 모든 세속성을 초월할 수 있는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가 바로 ‘성인’이었고, 그것이 ‘성스러움’이었다.
동양에서도 이랬을까? 달랐다면 어떤 개념에서 출발했을까? 그 근원을 찾아가는 방법은 여전히 한자의 어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성인을 뜻하는 성(聖)자가 갑골문시대부터 출현했고, 지금까지 별다른 자형(字形) 변화 없이 그대로 쓰여 근원과 변화를 추적할 수 있음은 퍽 다행스럽다.
성(聖)은 갑골문에서도 지금처럼 耳(귀 이)와 口(입 구)가 의미부이고 (좋을 정)이 소리부인 구조다. 여기에 든 정( )은 발돋움을 한 사람을 그렸는데, 비슷한 모양의 임( )과 섞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임( )은 정( )과 달리 가운데 획이 긴데, 날실(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이 장착된 베틀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보통 사람 뛰어넘는 총명한 존재 일컬어
그래서 성(聖)은 발돋움을 해( ) 남의 말(口)을 귀담아듣는(耳) 사람이라는 의미를 그렸다. 뛰어난 지도자를 뜻했던 고대의 ‘성인’에게서도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최고 덕목의 하나인 ‘경청’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민중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 충직한 비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그리하여 독단으로 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최고 덕목임을 강조한 것이다.
성(聖)의 초기 형태에는 구(口)가 빠진 자형도 보이는데, ‘성인’의 근원이 사실은 ‘귀’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뛰어난 청각을 가진 사람’을 상징하는 큰 귀(耳)는 원시 수렵시절, 야수나 적의 침입을 조기에 발견해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상징한다. 이는 갑골문시대 훨씬 이전의 원시 수렵시대의 생존환경과 그 흔적이 축적돼 남겨진 것이다.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무기와 생산 도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계급과 국가가 출현했다. 그러자 성(聖)도 수렵시대의 족장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변신하는데, 아마 이때 더해진 것이 구(口)일 것이다. 구(口)는 입을 그렸고, 입은 말을 상징한다. 남의 말을 귀담아들어 그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민심을 헤아리는 존재가 바로 ‘지도자’임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로부터 성(聖)은 보통 사람을 넘는 총명함과 지혜를 가진 존재나 성인을 말하게 됐고, 학문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도 지칭하게 됐다 특히 유가에서는 공자를, 불교에서는 부처를, 도가에서는 도통한 자를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3. ‘제왕’을 지칭하는 말들
성(聖)의 초기 모습은 원시 수렵시대, 청각이 출중한 사람으로 소속 집단을 지키는 존재였다. 성(聖)은 이후 “소리만 들어도 감정을 알 수 있기에 성인이라고 했다(聞聲知情, 故曰聖也)”는 [풍속통(風俗通)]의 언급처럼 소리만 듣고서도 말처럼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신한다.
인간의 간접지식은 감각능력으로부터 오는 법, 감각은 지혜로움의 상징이다. 특히 중국에서 ‘귀’는 더욱 그렇다. 단순히 청각을 뜻하는 청(聽)이나 성(聲) 이외에도 총명함을 뜻하는 총(聰), 부끄러움을 뜻하는 치(恥=耻)에도, 벼슬을 뜻하는 직(職)에도 ‘귀(耳)’가 들었다. 이처럼 한자에서 귀(耳)는 특별한 상징을 갖고 있다.
성(聖) 이외에도 ‘제왕’을 뜻하는 한자는 많다. 제(帝)나 왕(王)·황(皇)·군(君)·주(主) 등이 그들이다. 제(帝)는 식물의 꽃 꼭지를 그려 곡물 숭배 사상을 반영함으로써 농경시대의 제왕을 대표한다. 그리고 왕(王)은 도끼나 모자를 그려 당시에 출현한 국가와 계급 사회에서의 권위를 상징함으로써 청동기시대의 제왕을 표상한다.
왕권시대에는 최고 권력자도 성인으로 불려
왕(王)에서 분화해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 모습을 한 황(皇)은 철기시대를 대표한다. 진시황이 자신의 지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봐 왕(王)과 구별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글자로 보인다. 이후에는 이들 글자들이 서로 결합해 황제(皇帝)·제왕(帝王)·군주(君主)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이에 비해 군(君)은 손에 붓을 든 윤(尹)으로 구성돼 군자·귀족·역사관과 비판의식을 가진 지식인을 지칭하며, 기록의 시대를 대표한다. 이 때문에 군(君)은 군자(君子)에서처럼 정치권력과는 상관없이 최고의 지식인이자 그 이상향을 지칭할 수 있게 됐다. 또 주(主)는 촛대와 촛불심지를 그려, 자신을 불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구성원을 위해 희생하는 자가 바로 ‘주인’이자 ‘임금’임을 천명했다.
또 현자(賢者)나 현인(賢人) 등에서 보듯 현(賢)도 있는데, 정치적 요소는 약하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인 ‘성인’에 매우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나 현(賢)은 사실 앞서 들었던 글자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대단히 세속적이고 경제적 관리 능력이 뛰어난 자를 말했다.
현(賢)의 어원을 보면 원래는 臤(굳을 간·현)으로 써 노예(臣)를 관리하는 모습을 그렸고 이후에 ‘재물’을 뜻하는 貝(조개 패)가 더해져 지금처럼 됐다. 그래서 노비를 잘 관리하고(臤) 재산(貝)을 잘 지키는 재능 많은 사람이 현(賢)의 원래 뜻이고, 이로부터 재산이 많다, 총명하다, 재주가 많다, 현명하다, 현자 등의 뜻 등이 나오게 됐다.
현(賢)에 든 세속적 요소가 부담스러웠던지 속자에서는 윗부분을 臣(신하 신)과 忠(충성 충)으로 바꾼 현(贒)으로 쓰기도 하는데, 충신(忠臣)이 바로 현자(賢者)임을 강조했다. 왕권제 사회에서 나온 글자답다.
이외에도 성인은 아니지만 지혜롭거나 뛰어난 자를 지칭하는 한자도 많다. 먼저 능력(能力)이나 재능(才能)을 뜻하는 능(能)은 원래 ‘곰’을 형상한 글자인데, 육중한 몸에 비해 민첩함은 물론 지능까지 뛰어났던 곰의 재주를 특출해 만든 글자다.
지혜(智慧)를 뜻하는 지(智)는 앎을 뜻하는 지(知)에서 세월을 뜻하는 일(日)이 더해져 만들어진 글자로, 단순한 지식이 세월과 경험을 통해 슬기로 승화함을 표상했다. 또 혜(慧)는 혜성을 뜻하는 혜(彗)에 심(心)이 더해진 글자로, 이해능력이나 수용능력이 밝은 혜성처럼 빛나는 자, 한 번 들으면 알아듣는 그런 존재를 지칭한다.
게다가 철(哲)은 철(悊)이나 철(喆)로도 쓰는데, 분석(分析)을 잘하는 자를 말하고, 예(睿)는 계곡처럼(谷) 갚은 통찰력(目)을 가진 예리한 자를 말한다. [설문해자]에서는 예(睿)를 “깊고 명철하다(深明)”고 풀이했고, [옥편]에서는 “성인(聖)을 말한다”고 한 것으로 봐 철(哲)보다 한 단계 높은,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관조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통찰하는 능력을 가진 자를 말한다.
[공자가어] ‘오제덕’에서 “밝고 지혜로우며 두루 통한다면 천하의 임금이 될 수 있다(睿明知通, 爲天下帝)”라고 했다. 황제나 성인의 형용이나 예찬에 적절한 말이다.
이상에서 봤듯 성인을 지칭하는 여러 한자들은 처음에는 신성성 없이 천부적이고 지식이 많은 사람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배우지 않아도 알고,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 지고지상의 완벽한 존재나 성인을 지칭하게 됐다. 그리하여 왕권시대에 들면서 최고 권력의 소유자 황제도 성인이라 불렀고, 이후 각종 영역의 최고의 존재를 상징하기도 했다.
4. 중국의 성인들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예상과 달리 얼마 가지 못하고 망했다. 진정한 의미의 통일제국 ‘중국’은 사실 이를 이어 일어난 한나라에서 이뤄졌다. 영토는 물론 통치체제나 사상이나 민족적인 면에서도 전에 없었던 강력한 통일된 중국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무제(武帝) 때는 모든 면에서 최전성기를 맞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한(漢, Han)이라 부른다. 그래서 중국어는 한어(漢語), 중국 글자는 한자(漢字), 중국민족은 한족(漢族)이다. 이는 서구가 중국을 진시황의 진(秦)에 근거해 ‘China’라고 불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각종 영역에서 최고를 상징하는 말로 확장
이렇게 탄생한 위대한 제국을 위해서는 위대한 역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출현한 것이 신화화한 고대사들이다. 원래는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에 의해 출현한 다양한 문화가 교류·정복·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중국 문화가 된 것을 황하 중심의 단일 문화로 설정하고, [사기]에서처럼 삼황오제로 대표되는 일원적인 역사로 재구성한 것도 이때쯤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탄생부터 각종 제도와 문물의 발명까지 그 시작점에는 위대한 ‘성인’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탄생, 그 시작점에는 ‘복희(伏羲)’라는 신인(神人)이, 인류를 역사시대에 진입하게 한 문자의 발명에는 ‘문자의 성인’ 창힐(創頡)이, 쾌락과 즐김의 상징인 술의 발명에는 ‘술의 성인’인 두강(杜康)이 배치돼 역사를 더욱 그럴 듯하게 더욱 촘촘히, 마치 진실인 듯 구성해 나갔다.
이러한 고대사 만들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확장됐다. 한 무제 때는 유가가 다양한 사상을 물리치고 국가의 유일한 통치 이데올로기로 등극했다. 그래서 유가의 창시자 공자에게는 ‘성인 중의 성인’이라는 뜻의 ‘지성(至聖)’ 혹은 정신문화의 성인이라는 뜻의 문성(文聖)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자 맹자는 그에 ‘버금가는 성인’이라는 뜻의 아성(亞聖)이라는 수식이 주어졌다. 이를 이어 각 영역의 ‘최고’를 뜻하는 ‘성인’들이 끝도 없이 등장했다.
예컨대 한자를 문자에서 예술로 끌어 올린 왕희지(王羲之)는 ‘서예의 성인’이라는 뜻의 서성(書聖), 최초의 어원사전 [설문해자]를 만들어 한자학의 시초를 연 허신(許愼)은 ‘문자학의 성인’이라는 뜻의 자성(字聖), 초서에서 가장 뛰어났던 장욱(張旭)은 흘림체의 성인이라는 뜻의 초성(草聖)이라 불렀다.
‘성인’은 문학 등 다른 영역으로도 옮겨갔다. ‘춘망’이라는 시로 가슴을 찡하게 울렸던 당시(唐詩)의 대표 두보(杜甫)는 시성(詩聖), 송사(宋辞)의 대표 소식(蘇軾)은 사성(詞聖), 원곡의 대표 관한경(關漢卿)은 곡성(曲聖)이라 부르며 추앙했다. 당나라 최고의 화가 오도자(吳道子)는 화성(畫聖)으로, 바둑의 최고 황룡사(黃龍士)는 기성(棋聖)으로, 음악의 대가 이귀년(李龜年)은 악성(樂聖)이라 높여 불렀다.
‘성인’으로 이름 붙이는 습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 최고의 역사가이자 인류 불후의 명작 [사기]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사성(史聖), [삼국연의]에서 유비를 도와 충절과 의리가 갖춰진 무예의 전통을 세웠던 관우(關羽)는 무성(武聖), 한나라 때의 뛰어난 의학자 장중경(張仲景)은 의성(醫聖),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李時珍)은 약성(藥聖)이라 불렀다. 또 중국 차 문화의 전범을 마련한 육우(陸羽)는 다성(茶聖),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는 병성(兵聖)이라 불렸다.
이러한 성인 만들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2명의 성인, 24명의 성인에서, 48명의 성인, 64명이 성인이 됐고, 다시 72명의 성인, 100명의 성인 등이 등장했다. 성인이 이렇게 많은 중국, 그 역사는 그만큼 위대해진 것일까?
5. 성(聖)자의 변신
성(聖) 이외에도 ‘제왕’을 뜻하는 한자는 많다. 제(帝)나 왕(王)·황(皇)·군(君)·주(主) 등이 그들이다. 제(帝)는 식물의 꽃 꼭지를 그려 곡물 숭배 사상을 반영함으로써 농경시대의 제왕을 대표한다. 그리고 왕(王)은 도끼나 모자를 그려 당시에 출현한 국가와 계급 사회에서의 권위를 상징함으로써 청동기시대의 제왕을 표상한다.
왕권시대에는 최고 권력자도 성인으로 불려
왕(王)에서 분화해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 모습을 한 황(皇)은 철기시대를 대표한다. 진시황이 자신의 지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봐 왕(王)과 구별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글자로 보인다. 이후에는 이들 글자들이 서로 결합해 황제(皇帝)·제왕(帝王)·군주(君主) 등의 용어가 등장했다.
이에 비해 군(君)은 손에 붓을 든 윤(尹)으로 구성돼 군자·귀족·역사관과 비판의식을 가진 지식인을 지칭하며, 기록의 시대를 대표한다. 이 때문에 군(君)은 군자(君子)에서처럼 정치권력과는 상관없이 최고의 지식인이자 그 이상향을 지칭할 수 있게 됐다. 또 주(主)는 촛대와 촛불심지를 그려, 자신을 불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구성원을 위해 희생하는 자가 바로 ‘주인’이자 ‘임금’임을 천명했다.
또 현자(賢者)나 현인(賢人) 등에서 보듯 현(賢)도 있는데, 정치적 요소는 약하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인 ‘성인’에 매우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나 현(賢)은 사실 앞서 들었던 글자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대단히 세속적이고 경제적 관리 능력이 뛰어난 자를 말했다.
현(賢)의 어원을 보면 원래는 臤(굳을 간·현)으로 써 노예(臣)를 관리하는 모습을 그렸고 이후에 ‘재물’을 뜻하는 貝(조개 패)가 더해져 지금처럼 됐다. 그래서 노비를 잘 관리하고(臤) 재산(貝)을 잘 지키는 재능 많은 사람이 현(賢)의 원래 뜻이고, 이로부터 재산이 많다, 총명하다, 재주가 많다, 현명하다, 현자 등의 뜻 등이 나오게 됐다.
현(賢)에 든 세속적 요소가 부담스러웠던지 속자에서는 윗부분을 臣(신하 신)과 忠(충성 충)으로 바꾼 현(贒)으로 쓰기도 하는데, 충신(忠臣)이 바로 현자(賢者)임을 강조했다. 왕권제 사회에서 나온 글자답다.
이외에도 성인은 아니지만 지혜롭거나 뛰어난 자를 지칭하는 한자도 많다. 먼저 능력(能力)이나 재능(才能)을 뜻하는 능(能)은 원래 ‘곰’을 형상한 글자인데, 육중한 몸에 비해 민첩함은 물론 지능까지 뛰어났던 곰의 재주를 특출해 만든 글자다.
지혜(智慧)를 뜻하는 지(智)는 앎을 뜻하는 지(知)에서 세월을 뜻하는 일(日)이 더해져 만들어진 글자로, 단순한 지식이 세월과 경험을 통해 슬기로 승화함을 표상했다. 또 혜(慧)는 혜성을 뜻하는 혜(彗)에 심(心)이 더해진 글자로, 이해능력이나 수용능력이 밝은 혜성처럼 빛나는 자, 한 번 들으면 알아듣는 그런 존재를 지칭한다.
게다가 철(哲)은 철(悊)이나 철(喆)로도 쓰는데, 분석(分析)을 잘하는 자를 말하고, 예(睿)는 계곡처럼(谷) 갚은 통찰력(目)을 가진 예리한 자를 말한다. [설문해자]에서는 예(睿)를 “깊고 명철하다(深明)”고 풀이했고, [옥편]에서는 “성인(聖)을 말한다”고 한 것으로 봐 철(哲)보다 한 단계 높은,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관조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통찰하는 능력을 가진 자를 말한다.
[공자가어] ‘오제덕’에서 “밝고 지혜로우며 두루 통한다면 천하의 임금이 될 수 있다(睿明知通, 爲天下帝)”라고 했다. 황제나 성인의 형용이나 예찬에 적절한 말이다.
이상에서 봤듯 성인을 지칭하는 여러 한자들은 처음에는 신성성 없이 천부적이고 지식이 많은 사람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배우지 않아도 알고,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 존재, 지고지상의 완벽한 존재나 성인을 지칭하게 됐다. 그리하여 왕권시대에 들면서 최고 권력의 소유자 황제도 성인이라 불렀고, 이후 각종 영역의 최고의 존재를 상징하기도 했다.
4. 중국의 성인들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예상과 달리 얼마 가지 못하고 망했다. 진정한 의미의 통일제국 ‘중국’은 사실 이를 이어 일어난 한나라에서 이뤄졌다. 영토는 물론 통치체제나 사상이나 민족적인 면에서도 전에 없었던 강력한 통일된 중국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무제(武帝) 때는 모든 면에서 최전성기를 맞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한(漢, Han)이라 부른다. 그래서 중국어는 한어(漢語), 중국 글자는 한자(漢字), 중국민족은 한족(漢族)이다. 이는 서구가 중국을 진시황의 진(秦)에 근거해 ‘China’라고 불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각종 영역에서 최고를 상징하는 말로 확장
이렇게 탄생한 위대한 제국을 위해서는 위대한 역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출현한 것이 신화화한 고대사들이다. 원래는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에 의해 출현한 다양한 문화가 교류·정복·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중국 문화가 된 것을 황하 중심의 단일 문화로 설정하고, [사기]에서처럼 삼황오제로 대표되는 일원적인 역사로 재구성한 것도 이때쯤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탄생부터 각종 제도와 문물의 발명까지 그 시작점에는 위대한 ‘성인’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탄생, 그 시작점에는 ‘복희(伏羲)’라는 신인(神人)이, 인류를 역사시대에 진입하게 한 문자의 발명에는 ‘문자의 성인’ 창힐(創頡)이, 쾌락과 즐김의 상징인 술의 발명에는 ‘술의 성인’인 두강(杜康)이 배치돼 역사를 더욱 그럴 듯하게 더욱 촘촘히, 마치 진실인 듯 구성해 나갔다.
이러한 고대사 만들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확장됐다. 한 무제 때는 유가가 다양한 사상을 물리치고 국가의 유일한 통치 이데올로기로 등극했다. 그래서 유가의 창시자 공자에게는 ‘성인 중의 성인’이라는 뜻의 ‘지성(至聖)’ 혹은 정신문화의 성인이라는 뜻의 문성(文聖)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자 맹자는 그에 ‘버금가는 성인’이라는 뜻의 아성(亞聖)이라는 수식이 주어졌다. 이를 이어 각 영역의 ‘최고’를 뜻하는 ‘성인’들이 끝도 없이 등장했다.
예컨대 한자를 문자에서 예술로 끌어 올린 왕희지(王羲之)는 ‘서예의 성인’이라는 뜻의 서성(書聖), 최초의 어원사전 [설문해자]를 만들어 한자학의 시초를 연 허신(許愼)은 ‘문자학의 성인’이라는 뜻의 자성(字聖), 초서에서 가장 뛰어났던 장욱(張旭)은 흘림체의 성인이라는 뜻의 초성(草聖)이라 불렀다.
‘성인’은 문학 등 다른 영역으로도 옮겨갔다. ‘춘망’이라는 시로 가슴을 찡하게 울렸던 당시(唐詩)의 대표 두보(杜甫)는 시성(詩聖), 송사(宋辞)의 대표 소식(蘇軾)은 사성(詞聖), 원곡의 대표 관한경(關漢卿)은 곡성(曲聖)이라 부르며 추앙했다. 당나라 최고의 화가 오도자(吳道子)는 화성(畫聖)으로, 바둑의 최고 황룡사(黃龍士)는 기성(棋聖)으로, 음악의 대가 이귀년(李龜年)은 악성(樂聖)이라 높여 불렀다.
‘성인’으로 이름 붙이는 습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 최고의 역사가이자 인류 불후의 명작 [사기]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사성(史聖), [삼국연의]에서 유비를 도와 충절과 의리가 갖춰진 무예의 전통을 세웠던 관우(關羽)는 무성(武聖), 한나라 때의 뛰어난 의학자 장중경(張仲景)은 의성(醫聖),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李時珍)은 약성(藥聖)이라 불렀다. 또 중국 차 문화의 전범을 마련한 육우(陸羽)는 다성(茶聖),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는 병성(兵聖)이라 불렸다.
이러한 성인 만들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2명의 성인, 24명의 성인에서, 48명의 성인, 64명이 성인이 됐고, 다시 72명의 성인, 100명의 성인 등이 등장했다. 성인이 이렇게 많은 중국, 그 역사는 그만큼 위대해진 것일까?
5. 성(聖)자의 변신
한자는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한자가 대표적인 표의문자인 이상, 출발 때 형성된 대부분의 이미지가 그 속에 그대로 남아서 전해진다. 세상이 끝임없이 변화하면서 한자도 그 시대에 맞는 이미지를 반영하고자 꽤 노력했다. 그 때문에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성(聖)자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청각이 뛰어난 자로 그리거나, 구(口)를 더해 남의 말을 경청하는 정신을 그려낸 모습 자체로도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시대상을 표상하려 여러 의미 있는 변신을 계속해 왔다.
예컨대 아랫부분의 정( )의 의미를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되자 성( )이나 성( )·성( ) 등으로 바꿔 ‘성인’을 나라의 주인(主)이나 왕(王), 혹은 보배로움(玉)과 직접적으로 연계시켰다.
또 다른 모습의 성( )은 대(大)와 현(賢)의 결합으로 ‘위대한 현인’이라는 뜻을 담았으며, 성( )은 지(知)와 왕(王)의 결합으로 지식이 풍부한 ‘지혜로운 왕’이라는 뜻을 담았다. 또 성( )은 구(䀠)와 왕(王)의 결합으로, ‘두 눈으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왕’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성( )은 장(長)과 정(正)과 왕(王)의 결합으로 ‘오랜 기간 동안 정의로움을 집행하는 왕’이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이는 측천무후 창제 한자의 성( )과 닮았다. 성( )은 장(長)과 정(正)과 주(主)의 결합으로 ‘오랜 기간 정의로운 임금’으로 남길 원했던 자신의 꿈을 반영했다.
또 다른 모습인 성( )은 서(西)와 토(土)와 왕(王)의 주요 결합으로, “서쪽에서 온 왕”이라는 뜻을 담아 ‘부처’를 지칭하는데 사용했다. 베트남 한자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존재하는데 서(西)와 국(國)과 인(人)으로 구성된 불(佛)로, 글자 그대로 ‘서쪽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 모두 나름대로 문자 환경과 성인이 지향하는 목표를 잘 반영한 글자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 채택한 성(圣)은 최악이다. ‘성인’이라는 형상성도 완전히 잃었고, 독음 기능도 갖지 못하는 아무 의미 없는 ‘부호’가 돼버렸다. 그것은 아편전쟁 패배 이후 받은 충격으로 한자를 폐기하고 알파벳으로 가려 했던 ‘문자개혁’의 과도 단계로, 오로지 필획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였다. 한자의 장점인 형상성과 표의성을 완전히 상실한 결과물이다.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한국의 성( )
이에 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성( )은 대단히 훌륭하다. 문(文)과 왕(王)으로 구성돼 ‘문왕(文王)이 성인임’을 매우 형상적으로 그렸다. 필획도 줄었고 의미도 더욱 구상적이고 더욱 고상하게 그려냄으로써 훌륭하게 변신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창의성이다.
문왕은 주나라를 세웠던 무왕의 아버지다. 제사와 신화와 정치 등 모든 관심사가 신에 집중됐던 상나라를 극복하고 그 대상을 인간으로 전환시켜 인간 중심의 인문학이 시작된 왕조가 주나라다. 주나라의 이러한 정치제도나 사상문화는 지금의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여러 제국의 전통을 구축했다.
‘인문’의 상징이 된 주나라, 그 기틀이 모두 문왕에서 만들어졌다. 상나라의 제후국일 때도 온갖 견제와 수모까지 견디며 절치부심, 나라의 힘을 길러 상나라를 정복하고 새로운 인간 인문 중심의 세계를 열었던 왕이 문왕이다. 동양 최고의 철학서 [주역]도 그가 상왕에게 잡혀 유리성에 감금돼 있으면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시호(諡號)도 ‘문(文)’이라 붙여졌다. 중국에서 성인을 가장 대표할 만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아니면 유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에서 공자를 일컫는 ‘대성지성(大成至聖) 문선왕(文宣王)’에서 따온 ‘문선왕’으로 공자를 직접 표상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6. 구상과 추상
성(聖)에서도 우리는 한자가 갖는 분명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구상성이다. ‘성스러움’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을 ‘귀를 쫑긋 세우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존재’로 표현했다. 물론 통치자 중심의 개념으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어떤 사람이 성인이냐고 묻는다면, 이보다 더 명확한 답이 있을까? 눈에 잡힐 듯하지 않는가?
서구가 알파벳 문명으로 상징되듯 추상적·논리적 개념이 발달한 문명이라면 중국은 한자가 상징하듯 구상적·직관적 사유가 발달한 문명이다.
예컨대 서구라면 1번, 10번, 15번, 55번, 120번 고속도로 등으로 표현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오히려 경부고속도로(서울-부산), 남해안고속도로(부산-영암), 서해안고속도로(서울-목포), 중앙고속도로(부산-춘천)라 부르는 것이 더 편하고 잘 와 닿는다.
우리의 고속도로 번호도 서구처럼 매우 체계적인 원칙을 갖고 있다. 상징적인 1번 경부고속도로를 제외하면, 간선고속도로는 동서와 남북으로 구분해 끝자리를 각각 0과 5, 보조고속도로는 2와 7로 하며, 단거리 지선은 기존의 번호에 추가해 3자리로 만든다.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명명법인데도 동양을 사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경하다. 왜 그럴까?
바로 구상적·직관적 사유의 발달 때문이다. 그것은 어휘의 표현법에서도 충분히 증명된다. 중국의 상징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영어로 ‘The Great Wall’, 즉 ‘위대한 장벽’이라 부른다. ‘대단히 길다’는 개념을 ‘1만 리’로 표현한 것이다. ‘1만 리’리고 하면 10리가 어느 정도인지, 100리가 어느정도인지 알고 있기에 쉽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남의 말은 병을 낫게 하는 약이다
물론 만리장성은 1만 리를 훨씬 넘어 2012년의 실측 통계에 의하면 2만1196.18㎞([바이두 백과])라고 하니 무려 5만 3000리나 되지만 상징적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면적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강원도나 캘리포니아에서 난 산불은 물론 초대형 유조선이나 막대한 토지 소유를 이야기할 때도, 우리는 여의도의 몇 배이니 축구장의 몇 배 크기라고 표현한다. 축구장이나 여의도는 우리가 보고 기억한 크기로 남아 상상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경험치에 따라 달라지고 주관적인 면적인데도 말이다.
7. 오늘날의 성인
[노자] 제41장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사람은 도(道)를 들으면 부지런히 그것을 실행하고, 중간치는 믿는 듯 마는 듯 반신반의하고, 미련한 사람은 도리어 크게 비웃어버린다(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성(聖)자에서 담았던 ‘남의 말을 경청하는’ 성인의 미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남의 말은 애정이 담긴 비판이고, 이는 병을 낫게 하는 약이다. 더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불합리성에 대한 고발이라면 더 그렇다.
이러한 비판과 고발조차도 귀담아 듣고,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고쳐가야 하며, 각종 사회 모순과 불합리한 부분을 제도화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성인’이자 지도자가 갈 길이다.
그러나 그런 비판과 고발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현대 중국에서도 이러한 정신을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독재하고 싶은, 정치권력으로 남고 싶은 욕망에서 이런 이미지를 완전히 삭제해 아무 의미 없는 성(圣)으로 바꿨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성인이 갖춰야 할, 지도자가 갖춰야 할 미덕과 정신을 글자에서는 제거했을지 몰라도 그 가치와 생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뿐 아니다. 지도자만 가져야 할 덕목만도 아니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겸허한 태도, 그것이 자신감이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진정한 지도자가 되고, 진정한 지존으로 가는 길이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다.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성(聖)자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청각이 뛰어난 자로 그리거나, 구(口)를 더해 남의 말을 경청하는 정신을 그려낸 모습 자체로도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시대상을 표상하려 여러 의미 있는 변신을 계속해 왔다.
예컨대 아랫부분의 정( )의 의미를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되자 성( )이나 성( )·성( ) 등으로 바꿔 ‘성인’을 나라의 주인(主)이나 왕(王), 혹은 보배로움(玉)과 직접적으로 연계시켰다.
또 다른 모습의 성( )은 대(大)와 현(賢)의 결합으로 ‘위대한 현인’이라는 뜻을 담았으며, 성( )은 지(知)와 왕(王)의 결합으로 지식이 풍부한 ‘지혜로운 왕’이라는 뜻을 담았다. 또 성( )은 구(䀠)와 왕(王)의 결합으로, ‘두 눈으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왕’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성( )은 장(長)과 정(正)과 왕(王)의 결합으로 ‘오랜 기간 동안 정의로움을 집행하는 왕’이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이는 측천무후 창제 한자의 성( )과 닮았다. 성( )은 장(長)과 정(正)과 주(主)의 결합으로 ‘오랜 기간 정의로운 임금’으로 남길 원했던 자신의 꿈을 반영했다.
또 다른 모습인 성( )은 서(西)와 토(土)와 왕(王)의 주요 결합으로, “서쪽에서 온 왕”이라는 뜻을 담아 ‘부처’를 지칭하는데 사용했다. 베트남 한자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존재하는데 서(西)와 국(國)과 인(人)으로 구성된 불(佛)로, 글자 그대로 ‘서쪽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 모두 나름대로 문자 환경과 성인이 지향하는 목표를 잘 반영한 글자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 채택한 성(圣)은 최악이다. ‘성인’이라는 형상성도 완전히 잃었고, 독음 기능도 갖지 못하는 아무 의미 없는 ‘부호’가 돼버렸다. 그것은 아편전쟁 패배 이후 받은 충격으로 한자를 폐기하고 알파벳으로 가려 했던 ‘문자개혁’의 과도 단계로, 오로지 필획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였다. 한자의 장점인 형상성과 표의성을 완전히 상실한 결과물이다.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한국의 성( )
이에 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성( )은 대단히 훌륭하다. 문(文)과 왕(王)으로 구성돼 ‘문왕(文王)이 성인임’을 매우 형상적으로 그렸다. 필획도 줄었고 의미도 더욱 구상적이고 더욱 고상하게 그려냄으로써 훌륭하게 변신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창의성이다.
문왕은 주나라를 세웠던 무왕의 아버지다. 제사와 신화와 정치 등 모든 관심사가 신에 집중됐던 상나라를 극복하고 그 대상을 인간으로 전환시켜 인간 중심의 인문학이 시작된 왕조가 주나라다. 주나라의 이러한 정치제도나 사상문화는 지금의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여러 제국의 전통을 구축했다.
‘인문’의 상징이 된 주나라, 그 기틀이 모두 문왕에서 만들어졌다. 상나라의 제후국일 때도 온갖 견제와 수모까지 견디며 절치부심, 나라의 힘을 길러 상나라를 정복하고 새로운 인간 인문 중심의 세계를 열었던 왕이 문왕이다. 동양 최고의 철학서 [주역]도 그가 상왕에게 잡혀 유리성에 감금돼 있으면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시호(諡號)도 ‘문(文)’이라 붙여졌다. 중국에서 성인을 가장 대표할 만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아니면 유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에서 공자를 일컫는 ‘대성지성(大成至聖) 문선왕(文宣王)’에서 따온 ‘문선왕’으로 공자를 직접 표상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6. 구상과 추상
성(聖)에서도 우리는 한자가 갖는 분명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구상성이다. ‘성스러움’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을 ‘귀를 쫑긋 세우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존재’로 표현했다. 물론 통치자 중심의 개념으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어떤 사람이 성인이냐고 묻는다면, 이보다 더 명확한 답이 있을까? 눈에 잡힐 듯하지 않는가?
서구가 알파벳 문명으로 상징되듯 추상적·논리적 개념이 발달한 문명이라면 중국은 한자가 상징하듯 구상적·직관적 사유가 발달한 문명이다.
예컨대 서구라면 1번, 10번, 15번, 55번, 120번 고속도로 등으로 표현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오히려 경부고속도로(서울-부산), 남해안고속도로(부산-영암), 서해안고속도로(서울-목포), 중앙고속도로(부산-춘천)라 부르는 것이 더 편하고 잘 와 닿는다.
우리의 고속도로 번호도 서구처럼 매우 체계적인 원칙을 갖고 있다. 상징적인 1번 경부고속도로를 제외하면, 간선고속도로는 동서와 남북으로 구분해 끝자리를 각각 0과 5, 보조고속도로는 2와 7로 하며, 단거리 지선은 기존의 번호에 추가해 3자리로 만든다.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명명법인데도 동양을 사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경하다. 왜 그럴까?
바로 구상적·직관적 사유의 발달 때문이다. 그것은 어휘의 표현법에서도 충분히 증명된다. 중국의 상징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영어로 ‘The Great Wall’, 즉 ‘위대한 장벽’이라 부른다. ‘대단히 길다’는 개념을 ‘1만 리’로 표현한 것이다. ‘1만 리’리고 하면 10리가 어느 정도인지, 100리가 어느정도인지 알고 있기에 쉽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남의 말은 병을 낫게 하는 약이다
물론 만리장성은 1만 리를 훨씬 넘어 2012년의 실측 통계에 의하면 2만1196.18㎞([바이두 백과])라고 하니 무려 5만 3000리나 되지만 상징적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면적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강원도나 캘리포니아에서 난 산불은 물론 초대형 유조선이나 막대한 토지 소유를 이야기할 때도, 우리는 여의도의 몇 배이니 축구장의 몇 배 크기라고 표현한다. 축구장이나 여의도는 우리가 보고 기억한 크기로 남아 상상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경험치에 따라 달라지고 주관적인 면적인데도 말이다.
7. 오늘날의 성인
[노자] 제41장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사람은 도(道)를 들으면 부지런히 그것을 실행하고, 중간치는 믿는 듯 마는 듯 반신반의하고, 미련한 사람은 도리어 크게 비웃어버린다(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성(聖)자에서 담았던 ‘남의 말을 경청하는’ 성인의 미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남의 말은 애정이 담긴 비판이고, 이는 병을 낫게 하는 약이다. 더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불합리성에 대한 고발이라면 더 그렇다.
이러한 비판과 고발조차도 귀담아 듣고,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고쳐가야 하며, 각종 사회 모순과 불합리한 부분을 제도화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성인’이자 지도자가 갈 길이다.
그러나 그런 비판과 고발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현대 중국에서도 이러한 정신을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독재하고 싶은, 정치권력으로 남고 싶은 욕망에서 이런 이미지를 완전히 삭제해 아무 의미 없는 성(圣)으로 바꿨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성인이 갖춰야 할, 지도자가 갖춰야 할 미덕과 정신을 글자에서는 제거했을지 몰라도 그 가치와 생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뿐 아니다. 지도자만 가져야 할 덕목만도 아니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겸허한 태도, 그것이 자신감이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진정한 지도자가 되고, 진정한 지존으로 가는 길이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다.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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