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18> 주인 따라 불에 뛰어들어 타 죽은 원숭이

bindol 2022. 6. 1. 04:59

원숭이는 구슬픈 외마디 소리를 낸 다음(猴長慟一聲·후장통일성)

 

거지는 장터에서 원숭이 재주를 부리게 하고 빌어먹었다. 그는 원숭이를 아주 사랑해 매를 든 적이 없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땐 어깨에 원숭이를 얹어 갔다. 아주 피곤하더라도 언제나 그렇게 했다. 거지가 병들어 죽을 것 같게 되자 원숭이는 눈물 흘리고 울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 거지는 결국 굶어 죽었고 화장하게 되었다. 원숭이는 사람들을 보고 울며 절하고 돈을 구걸했다. 많은 사람이 불쌍히 여겼다. 불이 한창 맹렬하게 타오르고 시체가 반쯤 타자, 원숭이는 구슬픈 외마디 소리를 낸 뒤 불에 뛰어들어 (주인과 함께) 죽었다.

丏子弄猴, 乞於市, 愛猴深, 未嘗一擧鞭. 暮歸, 馱于肩, 雖憊甚, 不改也. 丏病且死, 猴泣涕, 不 離側. 餓死, 將火葬, 猴見人, 泣拜乞錢, 人多憐之. 及薪火方熾, 丏屍半化, 猴長慟一聲, 遂赴火死之.(면자롱후, 걸어시, 애후심, 미상일거편. 모귀, 태우견, 수비김, 불개야. 면병차사, 후읍체, 불리측. 아사. 장화장, 후견인, 읍배걸전, 인다련지. 급신화방치, 면시반화, 후장통일성, 수부화사지.)

조선 후기 여항시인 조수삼(趙秀三·1762~1849)의 ‘弄猴丏子(농후면자·재주 부리는 원숭이와 거지)’로 그의 저서 ‘추재기이(秋齋紀異)’에 있는 71편 이야기 중 하나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지가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부리게 해 얻는 돈으로 먹고 살아간다. 주인은 원숭이를 무척 사랑하여 아꼈다. 그런 주인이 병들어 죽었다. 사람들이 거지를 화장하려 하자 원숭이는 사람들에게 구걸해 돈을 약간 얻었다. 주인의 시신에 불길이 붙자 원숭이도 뛰어들어 함께 타 죽었다. 원숭이가 주인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에 가슴이 시리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 조수삼은 그 이야기를 기록했다.

사람은 사람을 배신하지만 동물은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명제를 보여준다. 며칠 전 필자의 집에서 밥을 먹는 들고양이의 새끼가 병들어 죽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애통해하는 그 어미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던 차에 이 원숭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