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승려가 벽에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이른바 성모다(有二僧繪畵其壁 所謂聖母·유인승회화기벽 소위성모)
술을 부어 제사를 마친 후 함께 신위 앞에 앉아 술을 몇 잔씩 나누고 파하였다. 사당은 단 세 칸이었으며, 엄천리 사람이 고쳐 지었는데, 이 또한 판자를 대 만든 집이다. 못을 박아 매우 견고하게 해놓았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람에 날릴 수밖에 없다. 승려 두 명이 그 벽에 그림을 그려놓았으니, 이른바 성모이다. 곧 석상이되, 눈썹과 눈, 쪽머리에는 모두 얼굴에 바르는 백분과 눈썹을 그리는 먹으로 발라놓았고, 목에는 군데군데 빠진 부분이 있다.
酹已, 共坐神位前, 酒數行而罷. 祠屋但三間, 嚴川里人所改創, 亦板屋, 下釘甚固, 不如是, 則爲風所揭也. 有二僧繪畵其壁, 所謂聖母, 乃石像, 而耳目髻鬟, 皆塗以粉黛, 項有缺畵, … (뇌이, 공좌신위전, 주수행이파. 사옥단삼간, 엄천리인소개창, 역판옥, 하정심고, 불여시, 즉위풍소게야. 유이승회화기벽. 소위성모, 내석상, 이이목계환, 개도이분대, 항유결화, …)
위 글은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유두류록(遊頭流錄)’의 일부로, 그의 문집 ‘점필재집(佔畢齋集)’ 권2에 들어있다.
함양군수 김종직이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성모를 모신 사당인 성모사(聖母祠)에 들어가 술과 과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낸 이야기다. 김종직의 1472년 8월 14~18일 지리산 유람에 유호인 조위 임대동 한인효 등의 제자가 동행했다. 첫날인 8월 14일 함양군 관아를 출발해 고열암에서 자고, 다음날 천왕봉에 올랐다. 이날은 성모사에서 자고, 16일에는 향적사, 17일에는 영신사에서 숙박하고 18일에 한신계곡과 백무동을 거쳐 관아로 돌아갔다.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 정여창은 스승이 지리산을 유람한 뒤 18년 지난 1489년 4월 14일부터 16일 동안 지리산을 유람했다. 김종직은 정몽주·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부친인 김숙자에게서 수학하여 조선 시대 도학의 정맥을 이었다. 그의 사상은 제자인 김굉필·정여창·김일손·유호인·남효온·조위 등에게 이어졌다. 특히 김굉필의 제자인 조광조에게 학통이 계승되면서, 김종직은 사림파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날씨가 제법 추운데 한 친구가 천왕봉에 올랐다고 연락이 와 김종직의 지리산 유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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