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모두 손 휘두르며 나를 물리치네
- 三被主人手却揮·삼피주인수각휘
석양에 두 집 사립문을 두드리며 섰으나(斜陽叩立兩柴扉·사양고립양시비)/ 주인은 모두 손을 휘저으며 거절하네.(三被主人手却揮·삼피주인수각휘)/ 두견새 역시 야박한 풍속을 아는 듯(杜宇亦知風俗薄·두우역지풍속박)/ 수풀을 사이에 두고 돌아가라고 울어대네.(隔林啼送不如歸·격림제송불여귀)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잘 알려져 있는 김병연(金炳淵·1807~1863) 의 시 ‘門前薄待(문전박대)’로, ‘김립시집(金笠詩集)’에 수록돼 있다. 시를 해석히며 약간 의역했지만, 여하튼 내용대로 떠도는 중 해거름에 남의 집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문전박대당한 모습을 읊었다. 김삿갓 또는 김립으로 불리는 김병연이 방랑시인이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 선천방어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당했다. 당시 6세였던 김병연은 하인 김성수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했다. 뒷날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돼 형제는 강원도 영월에 숨어 살던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아버지 김안근은 화병으로 죽었다.
가문 내력을 모른 채 살던 김병연은 1827년 20세 때 결혼했다. 그해 영월군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 과거에 참가해 장원급제한다. 이때 시제가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즉 ‘정 가산 군수의 순절을 논하고, 하늘에 사무치는 김익순의 죄를 탄핵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가산군수 정시(鄭蓍)는 반란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지만 김병연은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삿갓을 쓰고 방랑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1863년 57세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마을에서 객사했다. 19세기 중반 이우준이 쓴 ‘몽유야담’에 김삿갓 시 2편이 실린 것이 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김삿갓은 벼슬을 한 적이 없으므로 공식 문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시집은 이응수(1909~1964) 씨에 의해 1939년 처음 발행되었다. 며칠 전 전남 화순에 사는 분이 하동 화개면에 놀러 왔다가 목압서사를 찾아왔다. 화순에 김삿갓이 세상을 뜬 집이 보존돼 있다는 등 이야기를 하고 가셨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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