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38> 큰 아들의 과거 시험 앞두고 쓴 연암 박지원의 편지

bindol 2022. 6. 1. 05:43

비록 반도 못 썼다 해도 답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雖減半, 亦能呈券耳·수감반, 역능정권이)

 

과거 볼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과시는) 몇 수나 지어 봤으며, 또한 빨리 짓기에는 어려움이 없느냐? 제목을 보고 마음에 어렵게 느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장에 들어갈 일이고, 비록 반도 못 썼다 하더라도 답안지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섯 냥을 보내줄 테니, 이것을 보태서 시험답안을 쓸 종이와 과거 볼 때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려무나.

科事漸迫, 所做能得幾許首, 而亦能速作無礙否? 當題於意無難然後入場, 雖減半, 亦能呈券耳. … 五兩送給, 益之以爲試紙及科時所用, 可也.(과사점박, 소주능득기허수, 이역능속작무애부? 당제어의무난연후입장, 수감반, 역능정권이. … 오량송급, 익지이위시지급과시소용, 가야.)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1737~1805)이 큰아들 과거 볼 날이 다가오자 염려가 돼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위 편지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연암선생서간첩’에 실려 있다.

과시(科詩·과거를 볼 때 짓는 시)는 몇 수나 지어봤으며, 글을 빨리 짓는 데는 애로가 없는지, 답안지는 어떻게 해야 하며, 시지(試紙)는 어떻게 마련할 건지 등에 대해 챙겨주는 걸 보면 부정(父情)이 깊다.

과거장에서 답안지로 쓰던 종이인 시지는 응시자가 직접 마련했다. 응시자는 과거 보기 하루 전에 자신이 마련한 시지를 예조(禮曹)에 바치고, 예조에서는 어보(御寶)를 찍어 과거 날에 돌려주었다.

박지원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 종의(宗儀)는 연암의 형 희원(喜源)에게 입계(入繼) 했고, 둘째 종채(宗采)는 아버지에 대한 기록인 ‘과정록(過庭錄)’을 남겼다. 위 편지는 안의현감을 마치고 1796년 4월 18일 연암협으로 가는 도중에 썼는지, 이후 경종과 그 비(妃)인 선의왕후의 능을 관리하는 의릉령(懿陵令)으로 근무할 때 썼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필자의 큰아들도 어제 11일부터 오는 15일까지 국가자격시험을 치르고 있다. 며칠 전부터 염려만 하면서 간단한 편지를 써놓았다. 예민한 아이라서 혹시나 신경 쓰일까 봐 부치지는 않고 시험 끝나면 직접 전해줄 계획이다. 박지원 같은 대문장가나 산골 훈장인 필자도 아버지라는 입장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