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擁爐相伴畵梅花·옹로상반화매화
꽁꽁 언 마을에 눈서리 집을 두르고 쌓였는데(凍塢氷霜繞戶堆·동오빙상요호퇴)/ 화로를 낀 채 짝할 벗은 그림 속의 매화라네.(擁爐相伴畵梅花·옹로상반화매화)/ 젊은 날 산수의 흥을 따라다니던 그 길에서(依然少日湖山路·의연소일호산로)/ 찬 향기 소매 가득 담고 눈 밟고 돌아왔었지.(滿袖寒香踏雪廻·만수한향답설회)
조선 중기 위항(委巷) 시인 최기남(崔奇南·1586~?)의 ‘겨울날 서재에서 매화 그림을 보며(冬日書齋看畵梅)’로, 그의 문집 ‘구곡집(龜谷集)’에 있다. 겨울날 눈이 많이 내려 쌓여 있다. 최기남은 방안에서 그림 속 매화를 벗으로 삼았다. 소싯적 매화를 구경하고 소매 가득 꽃향기를 담아 눈을 밟고 돌아오던 시절이 상상되었다. 돈이 좀 있는 선비는 방에 매화 화분을 들여놓고 꽃을 피워 감상했다. 17세기 시인 신정(申晸)의 시 ‘밤에 혼자서(獨夜)’를 보자. “그믐 되자 매화가 사람을 보고 웃길래(近臘梅花笑向人·근랍매화소향인)/등불 아래 온 마음으로 마주한다네.(盡情燈火共相親·진정등화공상친)/추운 서재에서 눈 녹인 물로 차 끓여 마시는 흥(寒齋雪水烹茶興·한재설수팽차흥)/금을 새긴 비단 휘장의 봄인들 이를 당하겠는가?(何以鎖金帳裏春·하이쇄금장리춘)” 시에서 “매화가 사람을 보고 웃길래”는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매화는 운치가 빼어나고 격조가 높아 선비의 상징이었다. 특히 선비 중 벼슬하지 않고 절의를 지키는 처사(處士)에 비유했다. 차를 끓여 마시면 더 멋스러울 듯한데, 최기남은 가난하여 차를 마실 형편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 눈 내린 산속 집에서 화로를 끌어안고, 비록 그림 속 매화이지만 벗하는 시인의 낭만이 잘 느껴진다.
필자는 요즘 차산에서 살다시피 한다. 낫으로 잡목과 억새풀, 가시를 베고 차밭 사이 길을 내는 일을 한다. 어둑해지면 지난해 잘라놓은 잡목을 지고 내려와 아궁이 땔감으로 쓴다. 차산에 스무 그루 가량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다. 매화 핀 모습을 좋아해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하얀 매화를 많이 오랫동안 볼 수 있다. 요즘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잔뜩 맺었다. 눈발이 자주 날리며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성질 급한 어느 가지에서 조만간 한 두 송이쯤 꽃을 피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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